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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사적 159호(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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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분류 :
[사적-사적지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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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4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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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6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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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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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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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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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여행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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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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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으로 변한 문무대왕이 출현한 곳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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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건물은 1970년 발굴조사에 나타난 초석위에 세운 것인데, 고 신라의 목조건축의 특징을 재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최초의 건물은 언제 어떠한 형식으로 지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신문왕이 그토록 부왕을 위했으니 그 당시 바로 이룩하였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깃든 해중왕릉 대왕암을 지켜 바라다 볼 수 있는 조망이 좋은 곳이다.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는 글에서 따 온 것이다. '삼국유사'는 만파식적에서 '후에 용이 모습을 나타낸 곳의 이름이 이견대'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파식적으로 복잡해졌던 국내 사정의 안정을 되찾고, 왜구에 대한 두려움도 가시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이 만파식적은 금자(金尺)ㆍ화주(火珠, 또는 성덕대왕 신종)와 더불어 신라의 3기(三奇)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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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
●경주 (4번 국도) => 추령고개 => 동해 (양북면 어일리 검문소에서 929번 지방도로) => 6.5km |
◇ 대중교통
●경주에서 양남행 시외버스(아침6시50분부터 1시간 간격) => 감은사터 입구 혹은 대왕암 앞 봉길리 해수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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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대에 관한 전설 - 이견대와 만파식적]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그 부왕 문무왕이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의 침범을 막겠으니 동해 바닷가에 장사 지내라는 유언에 따라, 지금의 양북면 봉길리의 대왕암에 수장한 뒤 부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창건했다.
이듬해 임오년 5월 초에 해관 파진찬 박숙청이 "동해 속에 작은 산 하나가 물에 떠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합니다"고 급히 아뢰었다. 왕이 이상히 여겨 일관 김춘질을 불러 점을 친 즉 문무왕이 용이 되어 삼한을 보호하며 김유신을 대신으로 하여 하강시켜 왕에게 큰 보물을 전할 징조라 하였다. 왕이 동해안에 나아가 바라보니 산의 모양이 거북 머리 같고, 그 위에 한 그루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해졌다 한다.
다음 날부터 7일동안이나 천지가 진동하는 소용돌이가 있은 뒤 세상이 평온해지자 왕이 친히 바다를 건너 산에 올라 아무리 바라다 보아도 용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기다리다 지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 용이 나타나 검은 옥대를 바치면서 말하기를 "대나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는 것은 문무왕과 김유신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대나무로 나타난 것이므로 이 대나무를 베어서 합쳐 피리로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화평해질 것입니다" 하였다.
왕은 돌아와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장마 때는 비가 개며 바람이 불 때는 그치고 물결이 평온해지므로 그 피리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였다. 만파식적을 얻은 것을 기념하여 후세 사람들이 정자를 지어 만파정이라고 불렀으며 피리가 보관된 곳을 천존고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1967년 8월 1일 사적 제 159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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