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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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현종이 숨어 있던 곳 |
소재지 :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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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각산 서쪽 기슭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찰이다. 고려 현종이 대량원군으로 있던 때 12세의 어린 나이로 궁중에서 쫓겨나 중의 행색으로 숨어 지낸 곳이다. 당시 절의 주지인 진관조사가 방에 굴을 파서 대량원군을 숨기고 침상을 그 위에 올려놓고 거처해 화를 면했다 한다. 현종은 즉위 후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이곳에 큰 절을 짓고 진관사라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절에 수륙사(水陸社)를 설치, 임금이 행차해 직접 수륙재를 올려 유명해진 절이기도 하다. 수륙재는 육지와 수중의 고혼과 아귀에게 법식(法食)을 공양하는 것으로 불교 의식 중 으뜸으로 꼽히는 방대한 법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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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교통
●버스 일반버스 : 154, 155 좌석버스 : 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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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애왕후(964~1029)는 고려 제5대 경종의 왕비로서 목종의 생모이다. 경종이 981년에 죽자 왕비는 천추태후가 되었는데 파계승 김치양과 몰래 정을 통했다. 이 추문을 들은 성종은 김치양을 유배보냈다.
997년 성종이 죽고 아들인 목종이 18세로 왕 위에 오르자 태후는 섭정을 하게 된다. 이 틈을 타 천추태후는 유배갔던 김치양을 불러 우복야겸 삼사로 삼아 권력을 휘둘렀고,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했다.
목종이 후사를 헌종왕후가 낳은 대량원군(현종)으로 정하자 천추태후는 궁궐에 불을 지르고 반역을 꾀한다. 이 난은 강조에 의해 평정, 목종은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한다.
천추태후는 목종의 후계자로 정해진 대량원군을 참소하여 숭경사에 가두고, 호시탐탐 살해할 기회를 엿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뜻을 이루기 어려워 다시 신혈사로 대량원군을 보낸다. 신혈사는 북한산에 있는 작은 절로 진관스님이 혼자 수도하고 있었으므로 사람의 눈을 피해 대량원군을 없애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 사실을 안 진관스님은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지하 굴을 파서 당시 12살인 대량원군을 피신 시켜 자객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게 했다.
여기서 3년을 보낸 뒤 마침내 1009년 대량원군은 개경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고려 제8대 임금인 현종이다.
현종은 진관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신혈사 자리에 절을 짓고, 이름을 진관사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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