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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별장
부산의 새 명소로 등장한 영남권 최대 요정
소재지 : 부산 동래구 온천동 126-1번지
동래별장 영남지역 제일의 요정으로 군림해온 동래별장은 2천7백평의 대지에 본채 별채 정자 연못 수려한 정원으로 꾸며진 일본식 건물이다.
동래별장은 한때 동래 기생들의 춤과 노래가 있는 한국의 대표적 요정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경기불황으로 인한 영업난 등으로 지난 1996년 폐업한 후 부산시 등의 지원으로 국악 공연 관람과 전통 한정식을 제공하는 전통 관광음식점으로 최근 다시 문을 연 것이다.
부산을 찾는 외국관광객이 우리의 국악공연을 보면서 호텔급 수준의 전통 한정식을 먹을 수 있는 관광 명소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일제시대 일본인이 개인별장으로 지은 동래별장은 해방 이후 변신을 거듭해 왔는데 여전히 일본식 대저택의 멋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목조 2층의 200평 규모인 동래별장 본관의 경우 국내 남아있는 일본식 건물 가운데 그 사례가 없을 정도로 보존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내부의 석조 욕조는 국내에서 매우 드문 것이다. 정원과 수목 등도 보존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래별장이 전통음식점으로 거듭난 데 이어 조선시대 기생의 전통을 이어받은 '동래 권번'도 관광자원으로 개발될 전망이어서 동래별장이 옛모습과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 관심거리다.
동래 권번은 일제 때 결성된 기생조합으로 한때 부산 동래구 온천장을 무대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다. 지금은 사단법인 동래국악진흥협회로 이름을 바꿔 일반인들을 상대로 가야금 장고 춤 등을 강습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래구청이 '동래 기생'을 지역문화유산으로 보존,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권번 출신자들을 발굴, 시에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지정을 신청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기생 문화를 개발, 부산을 찾는 외국 관광객에 내놓을 수 있는 독특한 관광상품을 만든다는 것이 구청의 계획이다.


  찾아가는 길
◇ 승용차
●울산에서
산업도로 온천 사거리에서 금강공원입구로 우회전, 문화관광호텔로 진입하여 하차
●부산시내에서
산업도로 명륜로터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직좌회전(늘봄관광호텔 방면), 온천극장 방면으로 진입, 문화관광호텔로 진입하여 하차.
◇ 대중교통
●지하철
온천장역에서 하차 도보 10분거리
●시내버스
51번,36번,7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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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동래별장의 유래]

30여가구의 한적한 시골이었던 금산부락이 온천리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10년 한일 합방 직후.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전기회사, 철도회사를 설립 하면서 온천리에 여관, 대욕장, 요리점 등을 만들었다.
1940년초 일본인 박간방태랑은 온천리에 자신의 별장인 박간별장을 짓고 박간탕원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현재의 동래별장이다. 해방 후 박간별장은 인근의 군정사무를 관장(경상남도 제 3지구)하던 군정청이 되었다가 6.25 이후 다시 우리 손으로 넘어와 온천, 요리점으로 사용되었고 동래 별장으로 이름 붙여졌다.
박간방태랑은 일본 화가산헌(和歌山縣) 출신. 오사카시 오백정장(五白井長) 상점의 부산 지점 지배인으로 부산에 왔다.
처음에는 무역업으로 돈을 벌었고 이어 토지와 가옥 등을 수매, 굴지의 부동산업자가 되어 부산 제1의 재벌이 되었다.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1918년 일본에서 목수를 직접 데려다 동광동 2가 5번지에 박간총본점 점포겸 주택 2층 짜리를 세우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1945년 9월 5일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호텔, 여관 등은 연고가 있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접수했다.
미군이 상륙하자 박간별장은 경상남도 제3지구 군정청이 자리잡았다. 이곳에서 동래,양산,밀양,울산 등지의 군정 사무를 관장했다. 인근의 동래호텔은 미 G-2부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1952년 피난 정부 요인들의 파티장은 송해관(松海館)이 주로 이용되었다. 박간별장은 6.25이후 다시 우리 손으로 넘어와 온천, 요리점 등지로 사용되었고 동래 별장으로 이름 붙여졌다.

[동래별장의 보존 문제]

일제세대 일본인들은 국내에 일본식 건축물을 많이 세워놓았다. 화풍건축(和風建築)이라고도 하고 왜식건축(倭式建築)이라고도 호칭하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이러한 전통주거 건물을 우리나라에 지은 것은 자신들이 생활의 편리함에서도 였지만 고온다습한 기후에 적응되어 있던 그 자신들의 주거 관습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일본식 건축물의 공사가 한옥보다는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축주들은 일본에서 목수와 건축자재들을 들여왔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자들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별장 건물을 통해 당시 일본 전통 건축의 기법을 일부나마 살펴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이런 규모의 건축물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주택형태의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이 열 도시에 남아 있는 큰 규모의 건축물은 특수용도로 사용되거나 박물관화되어 있다. 보존하며 재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상 어려운 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재정지원, 세금혜택 등을 통해 돕고 있다. 비록 사유재산이지만 이런 건물이 철거되면 도시 환경이 피폐해지기 때문.
동래 별장 본관의 경우 목조 2층의 200평 규모로 국내에 그 사례가 없다. 내부정원과 수목 등도 보존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부의 석조 욕조는 특이한 것으로 관광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한식
  • 동래별장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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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 요리와 정통 일식의 명가
    동래별장은 한국 궁중요리와 정통 일본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영남 최고의 요정으로 군림해오던 동래별장이 2000년 10월 국악공연을 보면서 호텔급 수준의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관광 명소로 거듭난 것이다. 특히 단순한 음식점의 영역을 넘어 기품이 넘치는 요리와 음악, 공연, 웨딩 등이 어우러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등장했다. 한국 궁중요리를 즐길 수 있는 한식당 '송향(松香)'과 정통 일식당 설화(雪花)가 동래별장의 대표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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