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 : 사적 제122호 
기념물분류 : [사적-궁지]
지정일 : 1963.01.18  
시대 : [조선]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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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왕정이 가장 오랜기간 경영되어 오던 궁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와룡동 1
창덕궁은 처음에는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때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소실되고 조선말기에 복구될 때까지 270여년간 역대 임금이 이궁에서 정사를 봄으로써 본궁의 구실을 한 궁이다. 다시 말하면 왕정(王政)이 가장 오랜기간 경영되어 오던 궁인 것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관대궐' 또는 '동궐(東厥)'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창덕궁을 비롯하여 창경궁, 종묘가 모든 다른 궁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당초에는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동궐이었다. 특히 창덕궁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후원(後苑)이 조성되어 있어 중요한 비중을 안고 있는 궁이기도 하다.

창덕궁의 특징은 정궁(正宮)인 경복궁과는 달리 배치상에 규제가 없었다.
1축 선상에 전당을 두고 경복궁의 배치법 보다는 자연 지세에 알맞은 배치로 조화를 맞추어 가는 구상을 하였다.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으로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돌아 금천교(錦川橋)를 지나면 회랑이 있는 진선문(進善門)을 지나게 되는데 최근에 복원이 되었다. 다시 왼편에 남향하여 인정문(仁政門)을 들어서야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에 들어서게 된다. 정전인 인정전 동편으로 일상 집무를 보던 선정전(宣政殿)과 희정당(熙政堂)이 있고 그 동북편으로 내전(內殿)인 대조전(大造殿)이 있다.
그리고 동편으로 좀 떨어져서 내의원(內醫院)곽 낙선재(樂善齋)가 있다. 낙선재 바로 뒤가 창경궁이었는데 일제시대에 모두 헐려지고 지금은 별궁과 같이 되었다.

창덕궁은 조선 제3대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이 재천도하면서 창건한 궁이다.
태조 4년(1395년)에 시작된 공사는 만 일년만에 완공을 보았고 태종은 궁이름을 '창성한 기운으로 큰 덕을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 창덕궁(昌德宮)이라 칭하였으나 이 때에는 아직 궁궐로서의 여러 면모가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태종 11년에 이르러 진선문 석교(금천교)를 신축하고 태종 12년에는 돈화문을 건립함으로서 창덕궁은 완전한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세조가 즉위하여 창덕궁으로 옮겨오면서 큰 공력을 들여 후원을 가꾸었는데 후에는 많은 왕들이 후원을 조성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조선초기에 왕들은 경복궁에서 주로 정사를 보았으므로 창덕궁을 크게 이용하지 않은 듯 하나 제9대 성종(成宗, 재위 1469-1494)이 즉위하고부터는 왕이 창덕궁에 머물면서 정사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임진왜란때 경복궁을 비롯한 창덕궁, 창경궁 등이 전소되었는데 세 궁궐 중 창덕궁은 가장 먼저 복구 착수되어 1609년(광해군 1)에 중건되었다. 곧 이어 창경궁도 복원 되었지만 경복궁만은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868년에 중건되었다.
따라서 창덕궁은 임진왜란후 중건되면서부터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써 나라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치르는 역사의 주무대가 된다.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 지하철
3호선 안국(3)-도보 4분
* 버스
창덕궁 143-1, 16, 2, 6, 8,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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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 02-762-9513
  입장료
  어른 학생 청소년 어린이 군인 군경
개인 2,200원 1,100원 1,100원 1,100원 1,100원 1,100원
  부가정보
[관람시간]
* 국어
3월1일 ~ 10월31일 -> 09:15 ~ 17:15 (17회) 매시15분,45분 입장
11월1일 ~ 2월말 -> 09:00 ~ 16:00 (8회) 매시 정각입장

* 일어
3월1일 ~ 10월31일 : 10:30, 12:30, 14:30 16:30 (4회)
11월1일 ~ 2월말 : 10:30, 12:30, 14:30 (3회)

* 영어
11:30, 13:30, 15:30 (3회)
[관람요령]
신영훈 문화재전문위원이 추천하는 창덕궁 관람 요령이다. ▲ 집 주인의 시점에서 바라보라 집은 주인을위해 짓는 것이다. 궁궐의 주인은 왕이다. 따라서 아래서 올려다 보며 너무 높다느니 낮다 느니 평가하면 안된다. 위압적으로 보이는 담장도 주인이 기거하는 대 청마루에 올라 보면 딱 적당한 높이다. ▲ 공간의 성격을 파악하라 사적 공간인지, 공적 공간인지, 그 성격에 따라 공간 구성원리는 완전히 달라진다. 공적 공간인 궁궐에선 위-아래가 분명하다. 그러나 사적 공간인 후원에선 엉덩이를 흙바닥에 얹고 눈을 지그시 뜨고 바라보라. 그러면 천진난만한 정원의 세계가 느껴질 것이다.
[어차고]
조선말(朝鮮末)에 사용하던 어차(御車)를 전시한 곳으로 <다이물러>회사가 제작한 황후가 사용하던 차, <제너럴모터스>의 캐디락으로 순종(純宗)이 사용 하던 차, 불란서제로 고종황제가 사용하던 어차고(御馬車), 종2품(從2品) 이상의 관원이 타던 초헌(招軒), 고종이 타던 가마가 있다.
[낙선대]
헌종 13년(1847)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은 것으로 1989년 4월까지 덕혜옹주와 영왕비였던 이방자여사가 사시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서쪽부터 낙선재·석복헌·수강재가 배치되고 전면과 측면에 행각이 둘러져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 모두를 낙선재라 부른다. 후원에는 취운정·상량정, 별당인 한정당이 지형에 따라 배치되고 화계·담장의 무늬 등이 주변환경에 어울려 소박하면서도 아담한 경관을 이루고 있어 아늑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은 조선 3대 임금 태종이 만든 것으로, 왕과 왕자들이 공부하고, 사냥하고 무술을 익히고, 제단에서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지금도 옛 모습을 거의 잃지 않아 3백년이 넘은 거목들이 즐비한 가운데 맑은 물이 흐르고, 연못과 정자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왕조 궁궐의 조경수법을 엿볼 수 있다. 연경당을 지나 가파른 고개 길을 넘어서면 취한정 아래쪽에 옥류천이 나타난다. 취한정 왼쪽, 서쪽 산비탈 근처에 샘이 있는데, 네모난 돌뚜껑이 덮인 이 샘은 창덕궁의 수많은 샘 중에서 가장 물이 좋다는 어정이다. 어정에서 솟아오른 물이 흐르는 바위 곡수구는 활처럼 굽은 모양으로 경주 포석정과 같은 분위기다. 예전엔 곡수연이라는 풍류놀이가 있었는데, 굽이치는 물가에 앉아 술잔을 띄운 선비들이 그 술잔이 자기 앞을 지나기 전에 시를 짓고 잔 속의 술을 마시는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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