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지정번호 :
사적 제124호
|
 |
기념물분류 :
[사적-궁지]
|
 |
시대 :
[조선]
|
|
 |
주변여행지 |
|
잠잘곳
|
|
맛집
|
|
주변정보 |
|
|
|
|
|
|
|
|
|
|
|
| 덕수궁 |
 |
|
돌담길 따라 떠나는 시간 여행 |
소재지 :
서울 중구 정동 5-1
|
파리지엔느를 위해 몽마르트 거리가 있다면, 서울의 연인에겐 덕수궁 돌담길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전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 받는 덕수궁은 전통과 현대의 멋이 어우러진 도심 속의 고궁이다. 원래 덕수궁은 조선시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으로, 처음 궁으로 사용된 것은 임진왜란 때 궁궐이 불타버리자 선조가 이 곳에 임시로 거처를 정하면서부터이며, 치욕스러운 역사의 한 장인 한일 의정서와 을사조약이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대한문 앞에서 펼쳐지는 왕궁수문장 교대의식도 또 다른 볼거리이다.
*역사적 배경 경운궁 즉 지금의 덕수궁은 본래 정릉동 행궁(行宮)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광해군 3년(1611)에 경운궁(慶運宮)이라 개칭되었다. 이 정릉동 행궁은 그 전신이 성종의 형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저택이었는데, 선조 26년(1593) 10월 왕과 조정이 서북 피난지에서 환도하여 행궁으로 삼게 된 이래 궁궐의 구실을 하게 되었으며, 그 후 광해군 3년 경운궁(慶運宮)이라는 정식 궁명이 붙여지기까지는 그 소재가 정릉동인 까닭으로 정릉동 행궁(行宮)이라고 불리었다. 선조는 왕 26년 10월 이 곳을 행궁으로 사용한 이후 41년 2월 승하할 때까지 이 곳에서 정무를 총괄하였으며, 그의 뒤를 이은 광해군 역시 이 곳 행궁 서청(西廳)에서 즉위하여 7년(1615) 4월 창덕궁(昌德宮)으로 이거하기에 이르기까지 이 곳을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이리하여 광해군 3년 10월에 정식으로 경운궁의 궁호가 호칭된 이후부터는 도성내 왕궁의 하나로 되었다. 인조는 계해반정(癸亥反正)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경운궁 별당인 즉조당(卽祚堂)에서 인목대비의 명을 받아 즉위하였는데 이 궁은 조선 후기에 명례궁(明禮宮)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고종은 일제강점 후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내었으며 그가 승하한 1919년 이후부터는 주로 빈객의 접대 장소로 이용되었다. 특히 석조전(石造殿)은 우리나라 최고의 서양식 건물로서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의 회담장소로 사용된 일도 있고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참고자료 : 문화재청 >
|
|
|
|
|
|
|
◇ 대중교통
* 지하철 1호선 시청(1)-도보 1분 2호선 시청(2)-도보 1분 * 버스 시청 104-1, 129, 133, 135, 135-1, 135-2, 136-1, 142, 147, 150, 151, 158, 158-2, 158-3, 20, 23, 25, 26, 26-2, 38, 41, 53, 570, 573, 6, 73, 8, 83, 83-1, 85, 89, 1002(좌석), 1003(좌석), 12(좌 석), 129-1(좌석), 158(좌석), 41(좌석), 42(좌석), 46(좌석), 573(좌석), 61-1(좌석), 62(좌석), 62-1 (좌석), 63(좌석), 631(좌석), 68(좌석), 718(좌 석), 907(좌석), 912(좌석)
|
Powered by Naver
|
|
전화번호 02-771-9951~2 |
|
| |
어른 |
학생 |
청소년 |
어린이 |
군인 |
군경 |
| 개인 |
700원 |
300원 |
300원 |
300원 |
300원 |
300원 |
| 단체 |
550원 |
250원 |
250원 |
250원 |
250원 |
250원 |
|
|
[대한문]
덕수궁의 정문으로 대안문(大安門)이었으나 뒤에 현재의 동쪽으로 옮겨졌으며 불에 타(1904) 다시 지으면서(1906) 대한문이라 이름 붙였다. 대한문(大漢門)이란 글씨는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남정철(南廷哲)이 썼다.
|
[덕홍전]
덕흥전은 고종황제가 내외 귀빈을 접견하던 곳으로 1911년 건립되어 덕수궁내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나중에 세운 것이다. 이 건물의 둘레에는 행각이 있었으나 지금은 변형된 모습으로 일부만 남아있다.
|
[석어당]
중화전 바로 뒤편에 자리한 석어당(昔御堂)은 선조가 승하할 때 까지 15년간이나 거처했던 곳이다. 이 초라한 당우에 선조(宣祖)가 들게 된 것은 임진왜란의 병화로 경복궁도, 창덕궁도 모두 불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
[즉조당]
즉조당은 중화전이 건립되기 전에는 정전으로 사용되었으며 1608년에는 광해군, 1623년에는 인조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나 당시의 건물은 1904년 4월에 불에 타 버렸고 지금의 건물은 그 해 5월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 후 고종의 후비(後妃)인 엄비가 1907년부터 1911년 돌아가실 때까지 거처하였다.
|
[준명당]
이곳은 한때 고종황제가 거처하면서 외국사신을 접견하기도 하였으며 그 후에는 고종과 순종의 어진(초상화)을 모셔 두기도 하였다. 준명당의 동족으로는 즉조당으로 통하는 복도를 설치하였고 복도 아랫부분에는 높은 돌기둥을 세워 복도 밑으로 후원과 통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융통성있는 통로의 처리는 특히 창덕궁의 내전구역에서 그 실례를 많이 볼 수 있다.
|
[정관헌]
정관헌은 1900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궁궐안의 서양식 건물로는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고종황제가 다과를 드시며 음악을 감상하는 등 휴식처로 사용하던 곳이었으며 한때 태조·고종·순종·의 영정 또는 어진을 모셔두기도 하였다.
|
[석조전]
이 건물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09년에 완공된 석조건물로서 연면적은 1,222평이다. 건물은 3층으로 구성되었는데 1층은 시종인들의 대기장소이며 2층은 황제의 접견실로 사용되었고 3층은 황제,황후의 거실 및 침실 등으로 사용되었다. 광복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장,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쪽에 있는 별관은 1936년에 착공하여 1938년에 착공하여 1938년에 완공된 전시관 용도의 건물로 대개 석조전의 부속건물로 사용되었다. 또한 석조전 앞의 분수대 등 서양식 정원도 석조전을 세울 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미술관]
이 건물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09년에 완공된 석조건물로서 연면적은 1,222평이다. 건물은 3층으로 구성되었는데 1층은 시종인들의 대기장소이며 2층은 황제의 접견실로 사용되었고 3층은 황제,황후의 거실 및 침실 등으로 사용되었다. 광복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장,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쪽에 있는 별관은 1936년에 착공하여 1938년에 착공하여 1938년에 완공된 전시관 용도의 건물로 대개 석조전의 부속건물로 사용되었다. 또한 석조전 앞의 분수대 등 서양식 정원도 석조전을 세울 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광명문]
이 건물은 원래 함녕전의 정면 남쪽에 있어 함녕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것인데 1938년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홍천사의 범종과 보루각의 자격루를 진열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를 옮겼으며 지금은 문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있다.
|
|
|
|
덕수궁-중화전
(서울 중구)
|
|
| |
하례를 받거나 국가적인 행사를 거행하던 곳으로 5×4칸에 8작지붕의 품격있고 단아한 정전으로 안에는 일월오봉(日月五峯)병풍이 둘러진 어좌(龍床)가 놓여있다. 밖으로는 2단의 넓고 높직한 기단(月臺)이 있고, 돌을 깐 마당에는 문부백관의 품계석(品階石)이 나란히 서 있다.
...
|
|
|
|
|
덕수궁-중화문
(서울 중구)
|
|
| |
덕수궁의 중문이며 정전인 중화전의 정문에 해당되는 문이다. 단층건물이나 기둥을 높게하고 지붕을 크게하여 정전의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내려 하였다. 중화문은 현재 단독 건물처럼 남아 있으나 원래는 다른 궁궐에서와 같이 좌우로 연결된 행각이 동서쪽까지 둘러져 있어 중화전 마당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었으나 거의 다 철거되고 이 문 동쪽에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
|
|
|
|
|
덕수궁-함녕전
(서울 중구)
|
|
| |
보물 제820호인 덕수궁 함녕전은 고종 황제가 거처하던 침전이다.1897년 건축돼 1904년 불에 타버렸으나 같은해 12월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21일 이곳에서 춘추 67세로 돌아가셨다. 팔작 지붕으로 처마기둥머리 사이의 작은 나무조각들로 짜맞춘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형식으로 구름과 넝쿨 문양이 멋스럽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