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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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승 사명대사의 본사 |
소재지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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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역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황악산 1천100m 준령에는 능여암 운수암 내원암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들 암자 가운데 직지사가 있다. 418년(신라 눌지왕 2년)고구려의 승려 묵호자가 지었다고도 하고, 468년(눌지왕 52년)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세웠다고도 전한다. 창건설화 등에 따라 조선시대 거승 사명대사의 본사로 불리어 진다. 직지사란 이름 그대로 손가락으로 가르쳤다는 뜻인데 이름의 연원은 여러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전설편, 역사편 참조)
천년 묵은 칡뿌리와 싸리나무 기둥으로 된 일주문이 주위의 오래된 노송들과 잘 어울린다. 이곳 가을 단풍은 계절이 다 가도록 오랫동안 지속돼 고찰의 분위기를 한껏 돋군다. 절 안에는 1천구의 아기 부처가 안치되어 있는 비로전(일명 천불전)이 볼만하다. 대웅전을 통해 조선시대 건축미를 엿볼 수 있으며 대웅전 삼존불탱화삼폭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보물 670호) 그밖에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높이 1.63m의 석조약사 여래좌상(보물 319호)과 삼층석탑(보물 606호, 607호)이 있다.
한편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불교연수회관이 1994년 5월에 준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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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URL) : www.jikjisa.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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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
● 서울→경부고속도로→추풍령IC(3시간)→국도4번(김천 방면)→지방도903번→직지사
● 부산→경부고속도로→김천IC(2시간 30분)→국도4번(영동 방면)→지방도903번→직지사
● 김천역에서 12km, 경부선 직지사 역에서 4km |
◇ 대중교통
● 열차 경부선이용(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김천역 하차
● 시내버스 김천역 및 버스터미널에서 김천-직지사행 11번, 111번 시내버스 이용 10분 간격 운행 25분 소요(05:40-21:30,10분 간격운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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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무소 054-436-6174 / 054-436-6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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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거승 사명(泗溟)대사가 일찍 어버이를 여의고 황악산으로 입산할 때의 일이다. 밤에 직지사에 도착한 어린 사명대사는 스님을 깨울수가 없어 자그만한 움막에서 하룻밤을 지샜다.
새벽 도량석이 끝날 즈음 직지사의 노승은 꿈에서 직지사로 들어오는 큰 소나무 아래 누런 용 한마리가 하늘을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노승은 어린 사명을 본 후 '여기 있으라. 큰 스님이 되리라' 하고 반겨 맞았다. 이로써 직지사는 사명대사의 본사가 되었다.
이후 이곳은 조선시대 지방 향리들의 횡포로 거의 폐사가 되어 버렸으며 임진왜란을 지난 다음 근대에 이르기까지 초라한 모습으로 겨우 연명되었다. 그러나 불교정화운동에 의해서 관응(觀應)법사가 강원을 차려서 오늘의 비구도제를 길러낸 결과 이제 제일도량으로 부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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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사와 직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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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고승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지은 후 김산(지금의 김천) 땅을 바라보다가 황학산 중턱을 가리키며 "좋은 절터가 있다"고 말하여 절 이름이 직지사가 되었다고 한다.
직지사는 936년에 능여대사가 중건하였는데 완공을 보지 못하고 입적(스님의 돌아가심) 할 때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이산 아래 큰 절터가 있음을 아는가?" 하고 턱으로 가리켜 주었다고 하여 '직지사'라고 이름지었다는 전설도 있다. 또 능여대사가 이 절을 중건할때 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측량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나 도리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가람이란 것이 검증되었고 도리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직지사가 있으므로 아도화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맞을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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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지사 호랑이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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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악산 직지사 아래에 장생(張生)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장생은 오래 전부터 호랑이 잡는 일을 계속해 왔는데 하루는 함정을 파고 덫을 놓아 큰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았다. 그 뒤에 그의 아들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땅에 넘어지더니 한참 있다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왠 사람이 나타나 내 등을 심히 매질하면서 '왜 내 말을 죽였나' 하더라"고 말하였다. 차차 아들이 매맞았다는 곳이 헐어 터지고 그 아들은 미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장생은 그 후부터는 다시 함정을 파서 호랑이 잡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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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지사 금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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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떠돌이 승려가 있었다.
그는 전국을 떠돌아 경남 합천 어느 곳에 도착했다. 그 마을은 예로부터 대처승 마을이었다. 그 마을 촌장이 그를 보는 순간 사람의 됨됨이가 예사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마침 촌장에게는 결혼할때가 다 된 딸이 있어서 그를 사위로 삼기로 했다. 그는 비구승이라며 한사코 결혼하기를 거부했으나 바랑과 승복을 빼앗기고 강제로 결혼하기에 이르렀으며 촌장은 신랑승려가 도망칠까봐 그의 장삼과 바랑을 깊숙이 숨겨두었다.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고 살기를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장삼과 바랑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다음날 아침 부인이 눈을 뜨고 보니 옆자리에 남편이 없었다. 부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서 온 집을 뒤졌으나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후 부인은 그를 찾아 전국의 절을 모조리 뒤졌으나 허탕이었는데 어디선가 그와 비슷한 중이 직지사로 갔다는 소문을 듣고 부인은 이곳 황악산 직지사로 왔다. 부인은 그가 장계다리 아래에 있는 방앗간집에 묵고 있음을 알고 그 집에서 그를 기다렸다.
사흘이 넘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드디어 부인은 남편을 찾아서 절로 들어갔다. 일주문을 지나 지금의 금강문 자리에 이르러서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다.
그 이후 해마다 부인이 죽은 날이 돌아오면 직지사 승려들이 갑자기 달려나가 부인이 죽은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갔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직지사는 부인의 원귀를 위로하고자 그 옆에다 사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올렸다.
어느 해 이름있는 고승이 직지사를 찾아왔다. 사찰내에 사당이 웬말이냐고 나무랐다. 직지사의 승려들은 대사에게 사당의 유래를 얘기해 주었다.
"그러면 사당 대신에 금강문을 지어 금강역사로 하여금 여인의 원귀를 막도록 하오."
이렇게 하여 지금의 직지사 금강문이 세워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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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
학생 |
어린이 |
군인 |
| 개인 |
2,000원 |
1,500원 |
1,000원 |
1,500원 |
| 단체 |
1,500원 |
1,200원 |
800원 |
1,2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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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내부]
지장보살과 좌우의 무독귀왕, 도명존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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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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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에 신청월(申淸月)스님이 창건한 사찰. 본래 직지사의 직할 포교당이었으나 1955년 불교 정화 시기에 직지사 말사가 되었다.
1968년 전기 누전으로 목조 건물 3간이 전소되어 그해 11월에 김진홍(金眞弘)스님이 철근 콘크리트 슬라브(30평)로 재건했다. 1977년 김우룡(金雨龍)스님이 낡은 요사를 개축하였다.
이 절에 있던 고려 중기의 목조 관음상은 법당과 함께 불 타 없어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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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암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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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기에 창건된 고찰로 직지사의 암자이다. 이 곳에서 세 사람의 성현이 출현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조 때까지 전국 각지의 선승(禪僧)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등 선찰(禪刹)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구한말 의사(義士) 편강열(片康烈) 선생이 이 곳에서 제자들과 무술을 닦은 바 있다.
검은 바탕에 금실로 그린 높이 160cm 넓이 120cm짜리 후불탱화가 있었으니 1980년에 도난 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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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김룡사동종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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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聞慶 > 김룡사< 金龍寺 > 동종< 銅鍾 >은 신라종의 전통양식을 계승하는 한편 조선후기 종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종으로, 특히 당좌< 撞座 >는 사인비구의 독창성이 엿보이는 새로운 형태로 같은 해에 만들어진 강원도 홍천군 수타사 동종의 예와 함께 2구의 종에서만 보이고 있다. 수타사 동종에 비하여 각 문양간의 간격이 조밀하지만 수타사 동종의 선행작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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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석조약사여래좌상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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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배< 光背 >와 한 돌로 조성된 이 불상은 소발< 素髮 >의 머리에 육계< 肉계 >가 큼직한데 항마촉지인< 降魔觸地印 >과 유사한 손모양으로 왼손에 약호< 藥壺 >를 든 약사여래불상< 藥師如來佛像 >이다. 좁은 어깨에 삼도< 三道 >가 띠주름식으로 표현된 목, 양감< 量感 >은 여전하나 좁아진 무릎폭은 불안정한 자세인데, 우견편단< 右肩偏袒 >의 법의< 法衣 >는 평행계단식의 무딘 옷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주형거신광배< 舟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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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대웅전앞삼층석탑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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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 석탑으로 높이는 약 9m이다. 단층기단< 單層基壇 > 위에 단아< 端雅 >한 3층 정형탑< 定型塔 >을 세웠다. 이 탑은 원래 문경군< 聞慶郡 > 산북면< 山北面 > 서중리< 書中里 > 도천사< 道川寺 > 절터에 있던 것을 1974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상륜부< 相輪部 >는 1976년 복원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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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비로전앞삼층석탑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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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 석탑으로 높이는 약 9m이다. 단층의 기단< 基壇 > 위에 단아< 端雅 >한 3층 정형탑< 定型塔 >을 세웠다. 이 탑은 원래 문경군< 聞慶郡 > 산북면< 山北面 > 서중리< 書中里 > 도천사< 道川寺 > 절터에 있던 것을 1974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상륜부< 相輪部 >는 1976년 복원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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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대웅전삼존불탱화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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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형식으로 짜임새있는 규모와 화려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조선< 朝鮮 > 후기< 後期 >(18세기)의 건축이다. 대웅전 안에는 약사< 藥師 >·석가< 釋迦 >·아미타불< 阿彌陀佛 >의 삼세불상< 三世佛像 >과 불화< 佛畵 >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들 불화는 건륭< 乾隆 > 9년(영조< 英祖 > 20년, 1744)에 제작된 것으로 비단에 채색되었으며, 모두 세로가 6m인 긴 화폭을 이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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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사출토금동자물쇠외일괄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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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서로 다른 금동자물쇠 3점중 크기가 가장 큰 자물쇠의 상태를 보면 길이 30㎝, 신폭 3㎝로 몸체의 양단에 문양 및 장식이 있는데 주로 당초문양이며 좌우 끝에도 투각기법으로 정교하게 처리한 당초문계의 문양이 있다. 자물쇠에는 2개의 연결고리를 부착하였고, 열쇠구멍은 왼쪽부분에 설치하였다. 걸림쇠는 연꽃 봉우리로 장식 마감해 놓았으며 언뜻 보기에도 금동비녀 형식이다. 보다 자세히 보존처리를 하면 자물쇠 몸체에 화려한 선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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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청풍료앞삼층석탑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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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탑< 石塔 >은 경북 선산군 선산읍에서 동남쪽으로 약 6㎞되는 원동< 院洞 >에서 낙동강변을 따라 1㎞쯤 떨어진 강창< 江倉 >부락의 폐사지< 廢寺址 >(전< 傳 > 강락사지< 江洛寺址 >)에 도괴된 것을 1968년 선산군< 善山郡 >이 군청< 郡廳 > 전정에 이전 복원하였던 것을 1980년 10월 현재< 現在 > 위치< 位置 >에 이건하여 상륜부< 相輪部 >를 복원하고 1964년 이건시< 移建時 > 조성된 상대중석과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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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대웅전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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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형식으로 짜임새있는 규모와 화려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조선< 朝鮮 > 후기< 後期 >(18세기)의 건축이다. 대웅전 안에는 약사< 藥師 >·석가< 釋迦 >·아미타불< 阿彌陀佛 >의 삼세불상< 三世佛像 >과 이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형식으로 짜임새있는 규모와 화려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조선< 朝鮮 > 후기< 後期 >(18세기)의 건축이다. 대웅전 안에는 약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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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석조나한좌상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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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나한상은 본래 서운선사<瑞雲禪師>의 원불<願佛>로 전해졌으나 근래 직지사 박물관에 수장되었다. 극락암 석제나한상 18나한상 중 제13 인게다 존자의 존상이다. 호랑이를 어르는 모습으로 알 수 있다. 당당한 기품과 사실적인 표현기법으로 보아 고려문화 절정기인 인종(1123-1146년), 의종(1147-1170) 연간의 조성으로 보아야 하겠다. 서운대사의 원불이다고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 크기는 총고 45㎝, 두고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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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직지사장묘법연화경
(경상북도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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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法華經 >은 우리나라 불전< 佛典 > 개판사상< 開版史上 > 가장 많이 개판되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경전< 經典 >이다. 법화경< 法華經 > 28품은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수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다. 1세기경 낭본불교< 낭本佛敎> 본연의 모습이 사라져 교단이 침체되었을 때 부파불교< 部派佛敎 > 중에서 이를 반성하여 석가< 釋迦 > 재세시< 在世時 >의 상태로 복귀하려는 혁신운동이 일어났으니 곧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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