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살사 |
 |
|
청주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 |
소재지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7
|
신라 진흥왕 28년(567년)에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조사가 창건한 절. 청주시 남동쪽 낙가산 중턱에 자리잡아 청주지역에서는 가장 역사가 깊은 사찰이다. 신라 혜공왕 14년(778년) 진표율사의 제자인 융종대사가 중창한 뒤 고려 태조 원년(918년) 태조의 다섯번째 아들 증통국사가 중수했다. 고려 공민왕대에는 토지와 전답이 하사되었고 조선시대엔 세조 4년(1458년)에 어명으로 중수되었다고 한다.
신라 때 고찰답게 극락보전 (도유형문화재 제56호) 2존병립상 (도유형문화재 제24호) 보살좌상 괘불 5층석탑 (도유형문화재 제65호) 등의 유물이 있다. 극락보전은 조선 중기 목조건물로 조선 숙종 9년(1683년)에 중건된 후에 수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2단의 기단 위에 자연석과 초창 당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2단 원형주초를 초석으로 이용해 그 위에 원주를 세웠고 각 기둥에는 중창의 흔적이 뚜렷히 보인다.
|
|
|
|
|
|
|
◇ 승용차
● 경부고속도로 청주 IC ⇒ 청주시내 ⇒ 남부우회도로⇒ 보살사 (15km) ● 경부 고속도로 청주 IC ⇒ 청주시 외곽 ⇒ 남부우회도로 ⇒ 보살사 (30km) ● 중부 고속도로 서청주 IC ⇒ 청주시내 ⇒ 남부우회도로 ⇒ 보살사 (12km) |
◇ 대중교통
● 청주에서 보살사 종점까지 가는 버스편 이용. 거리는 2.8km. 매시간 운행. |
Powered by Naver
|
|
|
보살사영산회괘불탱
(충청북도 청주시)
|
|
| |
주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사리불과 8대보살·10대제자·제석천·범천·사천왕·금강역사 등의 신중들과 사방불이 겹겹이 에워싼 군도형식이다. 거신형 광배를 한 채 수미단 위에 결가부좌하고 항마촉지인의 자세를 취한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석가불은 방형의 얼굴에 엄격하고 근엄한 표정이며, 옆으로 퍼진 육계에 반달형의 중간 계주가 크게 묘사되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은 가슴을 넓게 드러내어 승가리의 묶음이 마치 하의를 묶은 것 ...
|
|
|
|
|
청주보살사석조이존병립여래상
(충청북도 청주시)
|
|
| |
이 불상은 커다란 판석에 두 불상을 나란히 부조< 浮彫 >로 조각한 병립불입상이다. 즉 한 돌광배< 石光背 >에 두 불상을 새긴 이른바 일광이불상< 一光二佛像 >인 것이다. 두 불상은 거의 비슷한 크기와 동일한 양식의 불상으로 동자< 童子 >같은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갸름하고 고운 어린애같은 얼굴에 천진스러운 미소를 담뿍 띄고 있으며 애리애리한 신체에 부드러운 굴곡을 나타내고 있고 통견< 通肩 >의 간략한 불의< ...
|
|
|
|
|
청주보살사극락보전 (淸州菩薩寺極樂寶殿)
(충청북도 청주시)
|
|
| |
극락보전< 極樂寶殿 >은 아미타불< 阿彌陀佛 >이 계시는 가장 살기좋은 서쪽의 극락세계< 極樂世界 >를 상징하는 건물로 소박한 맞배지붕이면서 내외가 장엄한 극락의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정면< 正面 > 3칸 측면< 側面 > 2칸의 전형적인 금당식< 金堂式 > 건물인데 자연석< 自然石 >의 주춧돌, 기둥과 지붕의 비례, 다포< 多包 >가 이루는 특징과 지붕골의 단순성 등에서 조선< 朝鮮 > 초기< 初期 > 건물의 유형이 강하게 ...
|
|
|
|
|
청주보살사오층석탑 (淸州菩薩寺五層石塔)
(충청북도 청주시)
|
|
| |
극락보전< 極樂寶殿 > 앞에 놓여 있는 이 오층석탑< 五層石塔 >은 극락보전과 함께 사찰< 寺刹 >의 품격< 品格 >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이다. 5층의 석탑이지만 높게 보이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아담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것은 5층의 탑신< 塔身 >이 모두 얕고 또한 올라갈수록 더 얕아지며, 탑지붕들 역시 옥개석< 屋蓋石 >받침을 생략한 채, 한 선< 線 >만 표현하였고, 기단부< 基壇部 > 역시 단순한 3단< 三段 >받침 ...
|
|
|
|
|
배첩장 (褙貼匠)
(충청북도 청주시)
|
|
| |
일제강점기에 청주시 문화동에 개업한 「청주표구사」는 서화 처리를 잘 하기로 유명하였다. 당시에 이를 운영하던 사람은 윤병세< 尹秉世 > 였다. 윤병세< 尹秉世 >의 전통 배첩기술은 그의 동생인 윤병의< 尹秉宜 >와 김표영< 金杓永 > (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에게 전수되었으며, 윤병의< 尹秉宜 >(윤병세< 尹秉世 > 작고후 청주표구사를 물려 받아 운영)의 기술은 홍종진< 洪鍾鎭 >에게 전수되었다. 따라서 윤병세< 尹秉世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