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자장의 피나는 구법으로 창건된 통도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15교구의 본산이며 전국에 100여개의 말사와 해외에 10여개의 포교당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다.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하는 계율 도량임이 분명하긴 하나, 율사뿐 아니라 경과 논에 해박한 논사(論師), 선리(禪理)에 밝은 스님들이 빽빽히 들어 차 있는 것으로 보아 실로 총림이라 부를만하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 (眞身舍利)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삼보 (三寶)사찰 중의 으뜸인 불보종찰 (佛寶宗刹)이기도 하다.신라 선덕여왕 12년 (643년)에 자장율사 (慈藏 律師)에 의해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로, 부처님의 사리(舍利)와 부처님이 입으셨던 가사 (袈裟) 등을 당나라에서 모시고 왔다. 그 중에서 정골사리 (頂骨舍利)와 부처님 가사를 이곳 통도사에 봉안 (646년, 선덕여왕 15년) 하였기 때문에 적멸보궁 (寂滅寶宮) 중 으뜸이 된다. 따라서 대웅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 현재,전국 31 본산 가운데에서도 선교양종 (禪敎 兩宗)의 대본산으로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근 조계종의 큰 선지식이었던 구하, 경봉스님등 수많은 선지식들이 계셨었고, 현 조계종 종정 (宗正)이시고 이곳 영축총림 방장 (方丈)이신 월하예하 (月下猊下)께서 주석하고 계신다.
통도사라는 사명(寺名)의 뜻은 영축산에 위치하여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하여 이름지어진 것이고, 또한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爲僧者通而度之)"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했다고 한다.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남북 자오선상 (子午線上)에 축을 유지하고 있는 가람배치로 법당을 기준으로 하여 상로전 (上爐殿), 중로전 (中爐殿), 하로전 (下爐殿)으로 구분되어 있다. 동서를 길게 뻗은 상.중.하로전 (法堂)의 전각 가운데 법당 만을 분류해 보면,
하로전은 -- 영산전, 극락보전, 약사전, 만세루, 범종각, 천왕문, 가람각, 일주문 등이 있다.
산내 소속 암자로는 안양암, 취운암, 사명암, 수도암, 보타암, 서운암, 옥련암, 백련암, 축서암, 비로암, 극락암, 백운암, 자장암과 관음암, 금수암, 무량암, 보문암, 배밭절 등이 있다. 통도사는 큰절도 좋지만 큰절을 둘러싸고 있는 암자들도 아늑하고 운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팔만대장경을 도자기로 굽는 작업을 수 년째 하고 있는 성파 스님의 작업가마가 서운암에 있다. 또 선화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수안 스님을 축서암에 가면 만날 수 있고, 각 암자마다 독특한 그 만의 색깔이 있으며 개성 있는 스님들을 만날 수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이 땅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불교 박물관을 갖추고 가장 넓은 사찰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타 사찰에 비해 적지 않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음은 물론 승려가 되기 위한 계를 통도사에서만 받을 수 있고, 큰 뜻으로 세상을 안아왔던 수많은 큰스님들이 지나가고 머무는 곳으로 그 규모나 역사적 의미 면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사찰이다.
찾아가는 길
◇ 승용차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부산이나 대구, 경주 방면에서 갈 경우, 통도사 I.C에서 빠져 나와 만나게 되는 첫 신호등에서 직진하여 계속 오다 보면 통도사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 대중교통
① 부산에서 ▣ 동부시외버스터미널(경남버스) ⇒ 신평(통도사)행 ⇒통도사 (매 20분 간격 : 첫차 오전 6:30 / 막차 오후 8:40) ▣ 사직동 고속버스터미널, 온천장 지하철역 앞(일반 천일고속) ⇒ 통도사IC 정류장 하차(매 20~30분 간격 : 첫차 오전 6시)
② 서울에서 ▣ 동서울종합터미널 ⇒신평(통도사)행 ⇒ 통도사 ▣ 시간표 : 서울→통도사 ( 9:00 / 15:00 / 17:00 )
"삼국유사" 자장정율(慈藏定律)조의 기록에 따르면 '자장은 선덕여왕 5년에 칙명(勅命)을 받아 중(僧), 실(實) 등 10여 명과 더불어 당나라로 건너가 청량산(淸凉山)에 들어갔다. 스님이 이곳 만수대성(蔓殊大聖)의 상(像) 앞에서 기도를 드리자 꿈에 소상(塑像)이 이마를 만지며 범어(梵語)로 된 게송(偈頌)을 주는 것이었다. 잠을 깨 그 뜻을 해득치 못하고 있는데 다음날 아침 이상한 스님이 와서 해석하되 "비록 만교(萬敎)를 배운다 할지라도 이 글보다 뛰어난 것은 없소"하며 가사(袈裟)와 사리 등을 건네주고 사라졌다.
선덕여왕 12년(643)에 신라국에서 율사의 귀국을 정식으로 청하자 율사는 불사리와 함께 가사, 경전 등을 가지고 귀국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리를 삼분하여 각각 황룡사탑과 통도사 계단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통도사의 금강계단이 바로 그 불사리 계단이다. 이 불사리 계단이 통도사의 큰 특징중의 하나이며, 이로 인해서 불보사찰의 칭호까지 얻게 된 것이다.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불사리 계단이 축조되었다. 특히, 고려시대에 와서는 이 계단에 얽힌 수많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
구룡지
옛날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지으려고 할 때 그 자리는 큰 연못이었다고 한다. 이 연못에는 9마리의 용이 살고 있어 구룡지라고 불렸는데, 하루는 율사가 주문과 경을 읽으며 용들에게 이 연못을 떠나 줄 것을 청하였으나 용들이 이를 거절하게 된다. 그래서 율사는 종이에 "火" 자를 써서 하늘로 날려보내고 법장으로 연못의 물을 저으니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용들 중에서 세 마리의 용이 죽게 되는데 그 죽은 세 마리의 용을 던져서 부딪친 바위에 용의 피가 묻어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 바위가 용혈암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섯 마리 용은 통도사의 남서쪽에 있는 산너머 골짜기로 달아났기 때문에 그곳을 오룡곡이라 부른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눈이 멀게 되어 율사에게 영원히 이 절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하고 머물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통도사 내에 남아 있는 구룡지이다.
입장료
어른
청소년
어린이
개인
2,000원
1,500원
1,000원
단체
1,200원
1,000원
700원
주차료
소형
대형
30분
2,000원
3,500원
부가정보
[삼성각]
삼성각은 구룡지 서쪽에 동향하고 있는데 구룡지를 중심으로 산령각과 응진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1870년 (고종 7) 영인대사 (靈印大師)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현재의 건물은 1935년 경봉대사 (鏡峰大師)가 중건하였다.
[통도사 8경(通度寺八景)]
통도사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골라 '통도사 8경(通度寺八景)'이라 했으니 무풍한송(舞風寒松, 취운모종(聚雲暮鐘), 안양동대(安養東臺), 자장동천(慈藏洞天), 극락영지(極樂影池), 비로폭포(毘盧瀑布), 백운명고(白雲鳴鼓), 단성낙조(丹城落照)가 그것이다.
[통도사의 가람 배치]
통도사의 가람 배치는 여느 절에서 볼 수 없는 특수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신라시대 가람배치의 기본 형태가 남북 일직선상에 금당(金堂:법당)과 탑이 놓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통도사의 경우는 남북 자오선상의 축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가람의 형태는 특수하게 배치되어 있다. 즉 금강계단이 있는 가람의 중심부에서 차츰 동쪽으로 이어져 나오면서 남북의 축을 별개로 동서로 뻗어 있다. 그러면서 가람이 배치된 지면(地面)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약간 높아지고 있으며 동시에 서쪽의 중심건물이 남북으로 놓인 셈이다. 따라서 이들 가람배치를 법당에 준하여 본다면 상·중·하 세 지역으로 나누어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구획하고 있다.
[통도사의 암자들과 금개구리에 관한 기록]
통도사를 싸고 있는 산내의 암자들도 안양암을 비롯 자장암,극락암, 비로암, 백운암, 축서암이 서북쪽에 자리잡고, 보타암, 취운암, 수도암, 서운암, 사명암, 백련암, 옥련암 등이 남쪽에 그 터를 잡고 있다.
특히 자장암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약 4㎞의 거대한 마애불이 있으며 '금개구리'에 관한 기록이 있어 유명하다.
'취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에 커더란 암벽이 있어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 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 바위가 가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 다닌다. 사승(寺僧)이 일러 금개구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산문(山門) 밖을 나가지 않는다 하니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않고 금개구리를 잡아 합(盒) 속에 넣어 단단히 닫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가 신통으로 자라게 한 것이라 말한다.
[보행로 옆 바위 ]
통도사 보행로 사이사이에서 바위에 글을 새겨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천유물관]
월하 방장의 친필 법문과 소장 공예품, 세계 각국의 불교사절단이 전달한 기념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양산 통도사의 부속암자.
고려말에 지어진 것으로 3천개의 금불상이 안치돼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염색방법인 '쪽염색'을 되살린 곳으로 더 유명하다. 성파(性坡)스님은 20여년 동안 쪽염색을 연구, 지금은 20여 식물을 이용하여 염색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성파스님이 밝혀낸 우리의 전통 염색방법은 '전통염색문화강좌'를 통해 전수되고 있다. ...
성보박물관은 사찰 전래의 문화재를 보존 전시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하여 일반대중의 불교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취지에서 건립되어 1999년 4월 개관하였다.
현재 박물관에 보유하고 있는 유물은 불교문화재를 중심으로 국가지정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을 비롯하여 지방유형문화재 34점을 포함한 약3만여점으로, 선사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유형별로 다양하다.
소장 유물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
금강계단(대웅전)은 통도사 창사의 가장 중요한 기틀을 형성하고 있다. 금강계단의 '금강'은 금강석을 의미하는 말로 불경에서는 그 강인함을 반야의 지혜를 표시하는 은유로 써왔다.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에 의하여 초창되었으나 임진왜란에 소실된 후 현 건물은 조선 인조 19년(1641) 우운대사가 중건하였다. 그러나 연화문, 당초문, 보상화문 등이 조각된 기단과 계단은 이후 중창 당시의 것으로 보인다.
대 ...
통도사의 대웅전(보물 제144호)은 위치뿐만 아니라 구조 또한 독특해 일반 대웅전과는 다르다.
동에서부터 삼문(三門: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통과하면 상로전의 중심 건물이다.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율사가 초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지금 건물은 조선조 인조 19년(1641)에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중건한 것이다.
초기의 건물 양식은 알 수 없으나 다행히 신라시대의 연화문(蓮花紋) 축대와 계석문양(階石 ...
통도사내 용화전 앞에 서 있다. 대석과 석발(돌바리때)의 두부분으로 된 특이한 모양의 석조물로 탑이라고 하기는 어색하나 다른 적당한 이름이 없으므로 봉발탑이라 불려지고 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복련이 새겨진 둥그런 하대석을 얹고 4각의 석주를 세웠다.
그 위에 앙련의 상대석과 육중한 뚜껑을 덮은 석발을 얹어서 대략 석등과 비슷한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석주가 4각으로 된 것과 연꽃잎의 양식으로 보아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
1085년(고려 선종 2년)에 통도사에서 화강암으로 만든 일종의 석비인 이 석표는 통도사 동남방 약 2km 지점인 하북면 백록리 국도변 논밭 가운데 세워져 있다. 통도사 경내를 표시하는 높이 162cm, 폭 약 60cm의 화강암으로 만든 이 석표는 전면에 4줄로 된 글이 음각되어 있는데, 이두문(吏讀文)으로 되어 있다.
명문중 국장생(國長生)이란 명칭은 국명에 의하여 건립한 장생이란 의미일 것이며, 경계표 구실과 풍수사상 ...
주발같은 몸체를 널따란 둥근 각대가 받치고 있는 보통 형식의 향로이다.
신부 중앙 4곡에 원좌를 두고 그 주위에 여의두문이 있다.
원좌 안에는 범자를 찍은 둥근 주석판을 4개의 못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원좌와 원좌 사이에는 유려한 보상화문이 입사되었고, 신부 밑에는 돌아가면서 화문과 사선으로 장식된 중판연화가 돌려있다. 특히 신부의 보상화문사이를 은판으로 입사하고 있음은 이 향로의 하나의 특징이다.
대의 밑은 넓게 확대 ...
통도사 불이문(通度寺不二門)
통도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해탈문으로서 1305년(고려 충렬왕 31년)에 처음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중기에 중창한 것으로 보고 있다. 편액에 '원종 제 1대 가람'이라 씌어져 있는데, 불사리를 봉안하였으므로 원종이라 한 듯하다. 그 위 또 하나의 편액 불이문은 송나라 미불의 필적이라 한다.
불이문은 하로전의 지반보다 2m가량 높은 곳에 축대를 쌓고 문으로 오르는 계단을 내 ...
응진전(應眞殿)은 대웅전(大雄殿)에 인접한 서편에 위치한다. 일명 나한전(羅漢殿)이라고 도 하며 그 초창(初創)은 숙종 3년(1677) 지섬대사(智暹大師)가 했다고 한다. 즉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대웅전의 중창 이후 주변 법당과 함께 건립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현재의 건물이 초창이라 하겠으나 그 이후의 중건 사실은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최근에 연목(椽木)의 보수가 있었다. 법당의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여래(釋迦如來)와 좌우 ...
관음전은 용화전 앞에 위치한다. 그러니까 중로전(中爐殿)의 중심이 되는 대광명전(大光 明殿), 용화전(龍華殿), 관음전(觀音殿)의 세 법당이 남북으로 나란히 놓인 가운데 제일 남쪽에 위치하는 법당이다. 관음전은 영조 25년(1749년)에 용암대사(龍岩大師)에 의하여 초창되었고 그 이후의 중수 사실은 미상하며 근래에 기와를 개수한 법당이다. 이렇게 창건이 늦은 법당이지만 그 전방에는 연대를 법당보다 더 올려야 할 석등 1기가 있 ...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은 대웅전(大雄殿) 동남쪽에서 응진전(應眞殿)과 마찬가지로 남북으로 자 리잡았다. 초창(初創)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18년(1369)이나, 중건(重建)·중수(重修)에 대하여는 자세하지 않고 이후 영조(英祖) 36년(1760) 춘파대사(春波大師)가 개건(改建)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종(高宗) 24년(1887) 실화하여 현 건물은 그 다음해인 1888년 호성대사(虎惺大師)에 의하여 ...
영산은 영축산의 준말로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립했다는 인도의 기사굴산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영산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란 뜻이다.
영산전의 초창연대는 알수 없으나 조선 숙종 30년(1704) 송곡선사가 중건하였다 한다.
건축양식은 다포계 수법이면서 맞배지붕으로 되어 측면에는 공포가 생략되었다.
외3출목, 내4출목을 두어 복잡한 구조를 이루었으나 내부에서 보면 비교적 간결하게 보인다.
특히 내부 ...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복위 6년(1337)에 취임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그 후 여러차례의 수리를 거쳐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최우에 안치된 사천왕은 동서남북 사방을 관장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상이다. 들어오면서 볼때 우측 뒤쪽에서 시계방향으로 동방지국천왕, 남방증장천왕, 서방광목천왕, 북방다문천왕의 순으로 목조사천왕을 안치하였다.
잡귀를 누르고 있는 이 우람한 사천왕상은 법주사 사천왕상 ...
우리나라 삼보(三寶) 사찰의 하나로 유명한 통도사 경내의 극락보전(極樂寶殿) 앞에 위치한 이 삼층석탑은 탑 앞의 배례석과 함께 통도사의 석조문화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이룬 일반형 석탑이다.
하층기단 면석에는 안상이 장식되고 상층기단 면석에 양 우주와 탱주 1주가 모각되었으며 갑석에는 얕은 부연이 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기 하나의 돌로 되었으며 옥개받침은 ...
통도사 석등(通度寺石燈)
통도사 대웅전 옆에 위치한 관음전(觀音殿)은 초창이 자세하지 않으나 이 석등의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이미 건립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관음전 전방에 위치한 이 석등은 하 나의 돌로 된 장방형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대석(下臺石), 간주(竿柱)가 8각으로 되어 있다. 하대석은 8각으로 2개의 돌로써 하대석을 이루는데 아래 돌에는 8면에 각각 하나씩의 안상(眼象)을 새겼고 그 형태는 직사각형의 ...
통도사 안양암(通度寺安養庵)
이 건물은 통도사 팔경(八景) 중의 하나인 안양(安養) 등대에 위치하며 대웅전 앞 서남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 위에 위치하고 있다. 최초 창건년대는 미상이나 충열왕 21년(1295)에 찬인대사(贊仁大師)에 의해 중건되었고 고종(高宗) 26년(1889)에 우담대사(雨潭大師)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법당은 일명 보상암(寶相庵)이라고도 불리우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팔자(翼工式 八作)지붕이다 ...
신라때 자장율사는 양산 통도사에다 사리를 받들어 모시고 뚜껑을 돌로 만들어 덮었다. 그런 뒤 어느 때 조정에서는 사자를 보내어 이 절에 참례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사자는 유명한 사리를 친히 보고자 스님들에게 명하여 돌 두껑을 열게 하여 보니까 그 곳에는 커다란 두꺼비가 앉아 눈알을 번득이고 있었다.
그 뚜껑에는 뒷날 아무개 성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열 것이라고 씌여져 있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아무개 ...
조선 숙종 12년(1686) 수오(守悟) 스님에 의해 초창되고 대종(大鍾)도 그때 수조되었으며 종 외에 8괘와 태극이 그려진 홍고(弘鼓), 운판(雲板), 목어(木魚) 등 불전용 4물이 있다. 팔작지붕으로 주심포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으로서 난간에 안상(眼象)을 뚫었다.
- 참고문헌 :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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