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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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법맥은 두륜산에 둘러싸여 오늘에 이르고... |
소재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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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이 끝나는 곳에 산이 우뚝솟아 있으니 호남의 명산 두륜산(703m)이다. 이 산의 봉우리가 마치 아기 포대기처럼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 바로 대흥사이다. 절 문앞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포근함은 이러한 지세 때문일 것이다. 대흥사는 실제로 매표소에서부터 시작한다. 찻길이 잘 닦여 있지만 산책길을 따라 울창한 수림과 계곡을 즐기면 올라가는 것이 좋다.산책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수림터널이 이어진다. 명상에 잠기듯 이 길에 취해 걷다보면 천연기념물인 왕벗나무의 자생지로 가는 길을 지나 수많은 부도가 마치 숲을 이룬 것 같은 부도림이 나타난다. 서산대사 부도를 비롯하여 무려 60여기의 부도가 서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대흥사 가람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광활한 산간 분지를 크게 네 곳으로 나눈 것이 특이하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일곽, 도량의 중앙에 넓게 자리잡은 천불전 일곽, 서산대사의 사당과 유물관이 있는 표충사 일원 그리고 중심 사역 맨 뒤편에 있는 대명광전 일곽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천불전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운치있는 담벼락을 보며 개울을 건너면 '침계루'란 현판이 걸린 누각이 나오고 이어 대웅전 마당이다. '침계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데 대웅전 옆 요사채에 쓰여진 현판 '무량수각'이라는 또 다른 추사의 글씨와 함께 눈여겨 볼 만하다. 응진전 앞에는 삼층사리탑(보물 320호)이 서 있다. 천불전에는 속설이 전해온다. 눈을 감고 삼배를 올린 뒤 눈을 뜰 때 처음 마주치는 부처님이 자신과 인연이 깊은 부처님이며 자신의 수호신이 된다는 얘기가 입소문으로 퍼져 있다.
대흥사는 청허당 서산대사(淸虛堂 西算大師, 1520~1604)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마친 후 서산대사는 제자 사명당(유정)과 처영(處英)스님에게 자신의 의발을 두륜산 대둔사에 둘 것을 유언하였다고 한다. 유정은 서산대사 시신을 다비하여 사리는 묘향산 보현사에 안치하고 영골은 금강산 유점사 북쪽 바위에 봉안하고 스님의 금란가사와 발우는 이 곳에 봉안했다고 한다. 서산대사 사당과 유물관이 잇는 표충사 일원엔 먼저 초의선사의 동상이 눈에 띈다. 유물관 안에는 금란가사, 발우 등 서산대사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으니 꼭 한번 들어가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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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URL) : www.daeheungs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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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
● 경부고속도로→회덕분기점→호남고속도로→광주 비아IC→나오면 삼거리가 나옴, 좌측 나주.목포방면→나주→해남.영암.완도 방면→ 영산포→나주-영암도로→해남.완도와 목포방면으로 갈라지는 큰 삼거리→해남방면→해남
● 서해안고속도로→목포IC→2번국도→해남 방면→13번국도→해남
● 남해고속도로→광주 비아IC→나오면 삼거리가 나옴, 좌측 나주.목포방면→나주→해남.영암.완도 방면→ 영산포→나주-영암도로→해남.완도와 목포방면으로 갈라지는 큰 삼거리→해남방면→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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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교통
● 고속버스 *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서울-해남, 5시간 소요, 1일 7회 운행, 강남터미널02-6282-0600 * 동서울터미널 서울-해남, 5시간 30분 소요, 1일 6회 운행, 동서울터미널 02-453-7710
● 직행버스 * 부산서부터미널 부산-해남, 5시간15분 소요, 1일 8회 운행, 부산서부터미널 051-322-8301 * 광부종합터미널 광주-해남, 2시간 소요, 1일 15분~20분 간격 운행, 광주종합터미널 062-360-8114 * 목포고속터미널 목포-해남, 1시간 소요, 20분~30분 간격 운행, 목포고속터미널 061-27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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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구이신왕 7년(426년)에 신라의 정관존자(淨觀尊者)가 창건하여 만일암이라 하였고 백제 무령왕 8년(508년8)에 이름을 전하지 않는 비구가 중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한편으로는 신라 법흥왕 1년(51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헌강왕 원년(875년)에 도선국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500개의 사찰을 짓는게 좋겠다고 상소하였는데 대흥사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설도 있다.
이 절이 크게 중창된 것은 서산대사가 대흥사를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종통의 소귀처이다.(三災不入之處 萬歲不毁 之處 宗統所歸之處)"라고 말하고 자신의 의발을 대둔산에 전할 것을 유언한 임진왜란 뒤의 일이다.
그 뒤 조선 현종 6년(1665년)에 심수(心粹)가 대웅전을 중창하였으며 현종 10년에는 표충사를 건립하였고 순조 11년(1811년)에 천불전이 불타자 1813년 완호(玩虎)와 제성(濟醒)이 중건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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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불상의 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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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불상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천불상이 경주 현지에서 완성되자 3척의 배에 싣고 울산을 거쳐 부산 앞바다를 지나 해남을 향해 오던 중 한 척의 배가 울산진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 장기현에 닿았다.
일인들은 이 옥불을 보고 기뻐하면서 서로 봉안하려 하였으나 그들 꿈에 불상이 나타나 "우리들은 지금 조선국 해남 대흥사로 가던 중이니 이곳에 봉안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이에 일인들은 할 수 없이 이 옥불을 거두어 배에 실어 해남으로 보냈다. 그때 그들이 분칠한 '日'자를 불상 밑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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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
청소년 |
어린이 |
군경 |
| 개인 |
2,000원 |
1,500원 |
1,000원 |
1,500원 |
| 단체 |
2,000원 |
1,200원 |
800원 |
1,2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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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부도전]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그의 문도들중 초의, 호암, 상월 등 13분의 대종사와 만화, 원오, 연해, 광열 등 13분의 대강사와 그 외 고승들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이 부도전의 부도수는 모두 54기로 단일 부도전으로 가장 큰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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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
대흥사가 대도량으로 중흥하게 된 것은 서산대사 덕분이다. 서산대사는 임란때 승병을 일으킨 분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불교 사상적인 면으로 볼 때 우리나라 선풍(禪風)을 진작시킨 분이다. 중국 선종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임제종(臨濟宗)의 맥이 서산대사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즉, 임제 - 태고 보우(太古 普愚) - 환암 손수(幻庵 混修) - 귀곡 각운(龜谷 覺雲) - 벽계 정심(碧溪 心) - 벽송 지엄(碧松 智嚴) - 부용 영관(芙蓉 靈觀) - 청허 휴정(淸虛 休靜)의 순이다. 서산대사는 임제의 법을 전수한 7세손이 되는 셈이다.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는 1,000여명에 이르고 그 중 유정, 언기, 태능, 일선의 네 사람은 가장 대표적인 제자로서 사산문하의 4대파를 이루게 된다. 서산대사는 명종 4년(1549년)에 승과에 급제하고 대선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나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 하여 자리에서 물러나 금강산 오대산 등을 두루 행각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 승병을 일으켜 구국에 앞장선다. 서산대사의 의발이 대흥사로 옮겨지면서 대흥사는 명실공히 선교의 총본산이 되었고 대사의 문도들 가운데 13대종사, 13대강사가 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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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일주문]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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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허루]
출입자를 위해 문지방 턱을 휘게 만들었다. "가허루" 라는 글은 이 삼만(李 三晩) 님의 글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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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무량수각]
추사 김정희선생님의 글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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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대웅보전]
대웅보전은 전면에 장대석으로 쌓은 단 위에 기단을 마련하고 전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귀기둥을 제외한 전면기둥 상부에 용두를 새기고, 쇠서에 연꽃을 새겨 조선후기 특징을 보여준다. 가운데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 원교 이광사(1705 ~ 1777)선생의 글씨이다. 대웅보전 안에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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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북미륵암 3층석탑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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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산정 가까이에 있는 북미륵암에 세워진 이 석탑은 이중 기단 위의 3층석탑으로 일반형을 따르고 있다. 기단은 지대석 위에 하대석과 중석을 수매 장석으로 짜고 중석을 우주와 탱주1주가 표시되었다. 갑석도 수매 구성인데 면은 두껍고 상면에는 거의 경사가 없으며 중앙은 호형의 괴임이 1단 마련되었다. 상층 기단은 표면에 4우주와 중앙에 탱주일주가 각출되었다. 상층 기단 갑석은 밑에 크게 모각된 일단의 부연이 있고 상면의 경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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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응진전삼층석탑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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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 앞 오른쪽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탑의 주위에는 토담이 둘러쳐 있다.
기단부는 4매의 장석(長石)으로짜고,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조각하였으며, 갑석(甲石)은 1매의 판석으로 경사진 지붕위에 2단의 호형, 각형의 괴임을 새겨 상단기단을 받쳤다. 상층기단은 4매의 판석으로 중석을 구성하였다.갑석은 1매 판석으로 약간 얇은 듯 하고 밑에는 부연이 마련되었으며 상면은 경사가 뚜렷하고 중앙에 각형 2단의 몰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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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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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바위의 북면에다 조각하고 그에 잇따라 목조전실을 가구한 마애석굴의 주존이다.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뚜렷하며, 얼굴은 둥굴고 넓적한데 미련스럽지 않게 우아하다. 눈은 동공까지 묘사하고 있으며 평범한 비량에 알맞은 입은 이 불상을 격조 높은 위엄을 지니게 했다. 귀도 길게 어깨 위까지 내려와 세밀히 묘사했으며 목은 짧은데 삼도가 형식이나마 표현되고 있다. 두터운 옷에 싸였으나 몸의 굴곡이 대체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신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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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관음보살도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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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서산대사 유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두접의 관음보살도는 초의선사가 그렸다고 전해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십일면천수관음보살도'이고 다른 하나는 '준제관음보살도'이다. '십일면천수관음보살도'는 팔각연꽃대좌 위에 서 있는 입상으로 화염무늬 광배에 둘러싸여 있다. 정세한 필선을 사용하여 그린 얼굴과 머리묘사는 능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도식적인 느낌을 준다. 보살은 모두 43개의 손을 갖추고, 합장과 선정인, 아미타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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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대광명전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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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뒷편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별원 성격의 건물군인데 지금도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맞배지붕을 갖은 익공양식으로 매우 단아한 건물이다.
일단의 석재기단을 이루고 정평주초위에 민흘림이 뚜렷한 원주를 세웠다.
외부포작의 수법은 초익공이며 주간 중앙의 화반이며 창방, 평방 그리고 장혀와 굴도리에 연화문과 운학 등의 문양이 정교하다. 한편 문은 전면 중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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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서산대사 부도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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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입구에는 30여기의 부도가 있는데 그 중에서 서산대사 부도는 그 가운데 맨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8각원당형 부도로 기단은 상 중 하대로 구성되었고, 그 위에 탑신을 안치하고 정상에 상륜을 장식하였다. 하대석은 지대석과 연화대석으로 구분되는데 지대석은 8각이고 그 위에는 8판의복련이 조각되었다.
중대석에는 동물상 등이 조각되어 있고 상대석에는 하대석과 대칭으로 앙련8판이 장식되어 있다. 탑신에 '청허당' 이라 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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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서산대사 유물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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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자는 허능, 호는 청허·서산, 완산최씨이다. 안주 출신으로 지리산에 들어가 숭인에게서 중이 되고 1549년(명종 4) 승과에 급제한 후 판교종사·판선종사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특명으로 팔도십육종도총섭이 되어 73세의 노령으로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병 1천5백을 규합, 총사가 되어 활약했다. 그는 좌선견성을 중히 여기며 교를 선의 과정으로 보고 선종 에 교종을 포섭함으로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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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용화당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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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용화당(龍華堂)은 강당(講堂)겸 선방(禪房)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 조선 선조 13년인 1813년에 중건되었다. ㄱ자로 꺾여진 부분은 맞배지붕이고 다른쪽은 팔작지부으로 되어있다. 용화당의 남측부분은 온돌방 3개와 부엌이 있고, 중앙부분에는 큰 선방과 작은 방이 2개 있다. 큰 선방의 동서쪽에는 큰 퇴와 작은 툇마루가 있고, 부엌쪽에는 고상(高床)으로 된 다락방이 있다. 건물외벽은 세 살문, 붙박이 살창, 판벽(板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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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정조친필 서산대사 화상당명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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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는 서산대사가 1592년(선조 25) 왜란을 맞아 선조의 특명을 받아 제자인 유정·처영과 함께 승병을 모집하여 팔도도총섭이 되어 전공을 세우고 입적한 뒤, 그의 의발을 모셨던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 후 180여년이 지난 1788년(정조 12)에는 대흥사의 천묵·계홍스님이 서산대사와 유정·허영을 모시고 사우건립을 모색하여 이듬해에는 사우건립의 허가와 함께 '표충'이라는 사액을 받게된다. 당시 호조판서 서유린이 서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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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천불상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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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상은 천불전안에 봉안되어 있는 천구의 옥불상이다. 천불의 의미는 어느 때나 무한한 부처님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조선불교통사 및 동사열전에는 대흥사천불상에 대한 이야기가 기재되어 있다. 천불상은 경주의 옥으로 만든 것인데, 경주에서 해남으로 향하던 중 배 한 척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의 장기현까지 가게 되었다.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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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천불전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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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대문채와도 같이 평범한 단층 5칸 맞배집의 가허루(駕虛樓)의 어간을 거쳐 천불전 내정에 들어서면 정면의 높은 축대위에 천불전 불당이 마주보이고 왼쪽에는 노전채 봉향각이 오른쪽에는 옛 강원이던 용화당이 마당 둘레를 에워싸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중기 이후로 성행한 다포계에 속한 전형적인 건물로 그 짜임새 매우 화려하고 우아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남원 중심곽의 가장 안정된 곳에 자리잡은 남원 유일의 법당으로 18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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