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계사 |
 |
|
영조대왕과 인연이 깊은 'ㅁ'자형의 사찰 |
소재지 :
대구 동구 중대동
|
파계사는 신라 애장왕 5년(804)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불탄 원통전을 선조 38년(1605) 계관법사가 중창하였으며, 숙종 21년(1695)에 현응스님이 삼창하였다.
파계사는 조선 영조대왕과 인연이 깊은데, 다음의 이야기가 1935년에 세워진 '팔공산파계사사적비'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 숙종 계유년(1693) 시월의 어느날, 임금은 예스럽고 소박하게 생긴 스님이 대궐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사흘 뒤 상서로운 빛이 궐내를 비추자 사람을 시켜 빛이 솟아나는 곳을 살펴보도록 하였고 남대문 밖에 쉬고 있던 파계사의 도승(道僧) 영원(靈源)스님을 뵙게 되었다. 숙종은 스님을 불러 손을 잡으며 기뻐하더니 수락산으로 가 칠성님께 왕자탄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보였고, 이듬해 갑술년(1694) 원자(元子)가 탄생하였는데 이가 바로 영조대왕이다. 을해년(1695) 스님이 돌아올 때 숙종은 '현응(玄應)' 이라는 호를 내리고 두터운 예우로 전송하면서 내탕금을 주어 칠성전(七星殿), 백화루(白花樓)를 짓게 하였다. 이 칠성전이 곧 자응전(慈應殿)이다.
이렇게 맺어진 왕실과의 인연이 조선 왕조 멸망 때까지 줄곧 이어짐으로써 파계사는 유생들의 횡포를 막아낼 수 있었다. 숙종 22년(1696) 왕이 손수 지은 축책(祝冊)을 내려주어 파계사는 왕실의 원당이 되었으며, 숙종 30년(1704) 영조가 열한 살의 나이에 '慈應殿(자응전)'이란 편액을 써서 하사하였다. 또한 영조 재위시에는 여러 차례 완문(完文)을 내려 양반과 관아의 침탈이 미치지 않도록 하였고, 우의정 이의현을 파견하여 기영각(祈永閣)을 세웠다. 정조 1년(1777)에는 '천향각(天香閣)'이라 쓴 어필 편액을 하사, 순조 31년(1831)에는 왕실에서 미타암을 세워주었고, 철종 11년(1860)년 왕비가 내탕금을 내려줘 백화루를 중수하였으며, 고종 14년(1877)에는 순찰사 박제인이 기영각을 수리하였다.
지금도 파계사에는 현응대사의 비석과 부도, 그리고 영조대왕의 어의가 보관되어 있다.
진동루라 불리는 누각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맞은 편에 파계사의 본전인 원통전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에 설선당과 적묵당이 위치해 있다. 이 격조 높은 당우 4채가 반듯한 'ㅁ'자형의 중심공간을 형성하고, 원통전 뒤쪽에 기영각과 산령각, 그리고 응향각이 있으며 응향각 동북쪽에 미타전이 있다. 이 밖에 법당 앞의 석등, 원의 전명 현응 등 세 대사의 부도와 비, 숙종의 하사품인 병풍과 구슬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현니암, 금당암, 성전암, 칠성암이 있는데, 그 중 경상북도의 3대 수도도량 중 하나로 각광 받고 있는 성전암에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현응의 영정과 벽화가 있다.
|
|
|
|
|
|
|
◇ 승용차
● 경부고속도로 동대구인터체인지 -> 대구 동촌비행장 입구 -> 아양교 -> 불로동, 봉무동을 경유 -> 금반산 기도원 -> 파계사 (동대구 인터체인지 -> 파계사,19.6km)
|
◇ 대중교통
● 401번 버스 : 대구시내 -> 동대구역 경유 -> 파계사 (1시간마다 운행) |
Powered by Naver
|
|
| |
어른 |
학생 |
어린이 |
군인 |
| 개인 |
1,000원 |
800원 |
500원 |
800원 |
| 단체 |
1,000원 |
700원 |
400원 |
700원 |
|
|
|
|
|
|
대구파계사목관음보살좌상부복장유물
(대구 동구)
|
|
| |
목조관음보살좌상은 파계사 원통전 주불로서 유리상자로 씌워져 단독으로 봉안되어 있다. 높이는 108.1 cm 로, 복장발원문(腹藏發願文)에 의하면 세종 29년(1447)에 이 불상을 중수한다고 적혀 있어 조성연대는 그보다 더 앞섬을 알 수 있다.
고려 후기 불상양식을 따른 것으로 신체가 장대한 면을 보이는 유형의 보살상에 속한다. 삼중(三重)의 높고 화려한 보관(寶冠)과 통견의(通肩衣)를 걸치고 있으며 온몸에 장엄하고 복잡 ...
|
|
|
|
|
파계사영산회상도
(대구 동구)
|
|
| |
파계사 영산회상도는 수미단 위 연화좌에 앉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보살을 비롯한 여러 성중이 시립(侍立)하고 있는 군집도의 형식이다. 수미단 바로 아래에 쓰여 있는 화기에 의해 1707년(조선 숙종 33년) 왕실에서 발원하여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이 그림은 형식에 있어 다른 영산회상도와 구별되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첫째 석가여래의 키형광배에 두광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고, 둘째 불의에 흔히 나타 ...
|
|
|
|
|
파계사원통전
(대구 동구)
|
|
| |
원통전은 대웅전이 따로 없는 파계사의 중심 법당이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선조 38년(1605)에 계관법사가 중건하고 숙종 21년(1695)에 현응조사가 다시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원통'이란 말은 주원융통(周圓融通, 진리는 두루 원만하여 모든 것에 통해 있다)이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 관세음보살의 불격을 표시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원통전은 관음전의 다른 이름이 된다.
이 법당은 정면 3칸, ...
|
|
|
|
|
파계사설선당
(대구 동구)
|
|
| |
조선 인조 1년(1623년) 계관법사(戒寬法師)에 의해 창건된 설선당은 원통전, 진동루, 적묵당과 함께 파계사의 중심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1646년과 1725년 두 번의 중건과 1762년 중즙공사(重葺工事)가 실시되었으며, 1922년과 1973년 부분적인 보수공사가 시행되었고, 1976년 대수선하였다.
건물은 정면 7간, 측면 7간 규모로 평면이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구조양식은 고복초석(鼓 ...
|
|
|
|
|
파계사산령각
(대구 동구)
|
|
| |
창건시대는 문헌 기록이 없어 잘 알 수 없으나, 1976년 중창되고 1979년 보수되었다.
화강석 외벌대 기단 위에 건립된 정면 1간 측면 1간 규모의 겹처마에 박공지붕집이며, 구조양식은 화강석 정평초석 위에 원주(圓柱)를 세우고, 주상(柱上)에 주두(柱頭)와 함게 앙서와 봉두(鳳頭)를 장식한 초익공(初翼工) 양식이다. 3량가(樑架)로 구성된 지붕 하부구조는 우물천장으로 가려져 있고, 건물 내외부에는 금단청(錦丹靑)을 올 ...
|
|
|
|
|
파계사적묵당
(대구 동구)
|
|
| |
신라 애장왕 5년(804년)에 창건되었다는 사전(寺傳)과 조선 광해군 12년(1620년)에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현재의 건물은 숙종 21년(1695) 중건되었고, 1920년 중창<重創>되었으며, 1976년 번와공사(飜瓦工事)가 있었다.
건물은 정면 6간, 측면 6간 규모로 평면이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당우는 전면만 겹처마인 팔작(八作) 지붕집이며, 구성양식은 주상(柱上)에 주두( ...
|
|
|
|
|
파계사진동루
(대구 동구)
|
|
| |
파계사 진동루는 조선 숙종 41년(1715)에 창건되었으며, 1970년 단청공사와 1976년 번와공사가 실시되었다.
정면 5간, 측면 3간의 2층 누각으로, 지붕은 팔작(八作) 겹처마로 꾸며져 있다. 구조양식은 주상(柱上)에 주두(柱頭)와 함께 2개의 쇠서를 장식한 이익공(二翼工) 양식이며, 가구(架構)는 5량가(樑架),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처리되었으며, 건물의 내·외부에 모노단청(毛老丹靑)을 올렸다. 이 건물은 후대에 ...
|
|
|
|
|
파계사기영각
(대구 동구)
|
|
| |
조선 숙종 35년(1696년) 경 현응조사가 성전암(聖殿庵)과 더불어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1974년과 1983년 두 번에 걸쳐 보수공사가 실시되었다.
건물은 화강석 바른층 쌓기 기단위에 건립된 정면 3간, 측면 2간 규모의 겹처마 팔작(八作)지붕으로, 구조양식은 덤벙 초석위에 원주(圓柱)를 세우고, 주상(柱上)에 주두(柱頭)와 함께 앙서와 수서를 장식한 외일출목(外一出目)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을 보이고 있다. 상부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