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립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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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유공원 기슭에 시립박물관이 전국에서 최초로 문을 열었다 |
소재지 :
인천 연수구 옥련동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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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인천 자유공원 기슭에 시립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전국에서 최초였다. 그것을 지난 1990년, 연수구 옥련동 현재의 자리에 현대식으로 말끔하게 단장을 해서 옮겨왔다. 시립박물관은 그동안 지방문화재를 열심히 발굴한 덕에 고미술품 4천3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모두 3개의 전시실과 야외박물관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향토인천의 과거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박물관 현관 앞엔 바로 철제범종3점(지방유형문화재 제3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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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
제1, 2 경인고속도로를 끝까지 타고 나와 송도방면 이정표를 보고 따라오면 10분정도 거리에 있다. |
◇ 대중교통
★시내버스 : 동인천역에서 6번,16번, 9번, 99번 이용 ★좌석버스 : 동인천역에서 107번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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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032-832-2570,2152 팩스:032-834-0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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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철제범종 (元代鐵製梵鍾)
(인천 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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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은 중국< 中國 > 원< 元 >나라 성종< 成宗 > 3년(1299) 주조< 鑄造 >된 것으로 중국 범종 특유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용유< 龍紐 >부에는 두 마리 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동적< 動的 >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고, 용유와 종견< 鍾肩 > 사이에는 당초문을 양주< 陽鑄 >하였으며, 당초문 사이에는 8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종신< 鍾身 >에는 "황제만세< 皇帝萬歲 >, 중신천추< 重臣千秋 >"등의 명문< 銘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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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좌상 (觀音坐像)
(인천 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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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형태로 보아 중국<中國> 명<明> 또는 청<淸>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머리에는 구슬로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가슴에는 화려한 구슬 목걸이를 하고 있으며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천의<天衣>는 지면까지 흐르고 있다. 또한 오른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천의 자락은 가슴을 거쳐 무릎 위 손목을 덮고 앙련형<仰蓮形> 대좌<對座> 위까지 이르고 있다. 대좌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오른 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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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로영정 (金在魯影幀)
(인천 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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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로(1682∼1759)의 자<子>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 본관<本貫>은 청풍<淸風>이다. 숙종<肅宗> 36년(1710) 춘당대시<春塘臺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세자 시강원 설서<世子 侍講院 設書>를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영조<英祖> 16년(1740) 영의정<領議政>에 오른 이후 관직을 물러날 때까지 네차례나 지냈다. 김재로의 영정은 현재 한국본과 중국본 2폭이 전하는데 이중 51세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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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여래좌불상 (木造如來坐佛像)
(인천 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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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래상< 如來像 >은 목조< 木造 >임에도 불구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전체적으로 단정한 자세이면서도 균형잡힌 모습의 얼굴표정에서 느낄 수 있듯이 많지 않은 조선시대< 朝鮮時代 > 목불< 木佛 >중 비교적 수작< 秀作 >에 속한다. 다만 흠이라면 나중에 만들어 낀 양 손이 없어진 점이다. 전형적인 나발< 螺髮 >에 이마에는 백호< 白毫 >가 있고, 양 귀는 길게 늘어졌으며 목의 삼도< 三道 >가 뚜렷하다. 약간 아래로 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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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보살좌불상 (木造菩薩坐佛像)
(인천 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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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연대 측정은 어려우나 조선시대<朝鮮時代> 불상<佛像>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표정이 사라지고 건조한 표피<表皮> 뿐인 얼굴, 체구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어서 비례가 맞지 않는 불균형, 옷이 두꺼워지고 주름이 약화된 표현 등은 조선시대에 들어 불상조각이 신앙심을 불러 일으키는 예배 대상으로 보다는 우상화<偶像化>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 왼손이 망실<亡失>되고 오른손 손가락이 훼손되어 수인<手印>을 확인하기 어렵다. 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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