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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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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산선종 중 가장 먼저 개선한 호국 사찰 |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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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심원, 달궁, 뱀사골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마천방면으로 가다보면 만수천(萬壽川)변에 호국사찰로 천년의 세월을 버티고 지내온 실상사가 나타난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가 세운 절로 9산선종 중 가장 먼저 생긴 것이다. 정유재란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았으며,현재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0여점을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약사전, 명부전, 칠성각, 선리수도원, 누각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극락전과 부속건물이 있고 사천왕문을 최근에 완성하였다. 특히 불상에는 보화가 많이 들어있다 하여 일찍이 도굴꾼들에 의하여 훼손된 적이 있었다. 그 불상의 복장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문(願文)과 사경(寫經) 및 인경(印經)이 수백권이나 있었고 고려판 화엄경소(華嚴經疏)등 보기드문 서적도 몇가지 있었다 하나 일부는 도난당하였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타버렸다 한다.
보광전은 홍척과 수척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범종이 걸려 있는데 이 종은 1664년에 만든 것으로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열도 지도 비슷한 무늬가 있어 종을 칠때 일본 동경 부분을 쳐서 일본의 야욕을 저지하고 우리나라 부흥을 기원하였다. 일제말기엔 간사한 위인의 밀고로 주지스님이 경찰에 잡혀가고 종에는 딱지가 붙어 8ㆍ15해방까지 벙어리가 되었었다.
실상사에는 눈길을 끄는 불교 문화유산이 많다. 국보 1점, 보물 11점, 거의가 정교한 솜씨로 다듬어진 석탑이요 탑 비, 거대한 철근여래상 등 수작들이다. 실상사를 처음 세운 홍척과 제2조 수철화상의 탑, 비등과 동서 두 탑, 백장암의 삼층석탑은 더욱 빼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다.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이곳에는 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실상사의 문화유적은 보물급에는 수철화상능가보월탑(33호·905),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34호), 석등(35 개산당시), 부도(36·고려), 삼층쌍탑(37·887), 증각홍척국사응료탑(38·861이후), 증각홍척국사응료탑비(39), 백장암석등(40·9세기중엽), 철조여래좌북(41·개산당시), 청동은입사향로(420·1584), 약수암목조탱화(421·1782)등 11점이 보존되어 있다. 지방유형문화재로는 극락전(45호·1684), 위토개량성책(88·토지대장), 보광전범종(138·1694)등3점이다. 중요민속자료는 실상사 입구의 만수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 양쪽에 세워져 있는 석장승 3기(15호)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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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전주IC - 전주시 - 17번 국도 이용 - 남원 - 남원IC - 88올림픽고속도로 진입 - 지리산 IC - 인월 ●호남고속도로 고서분기점 - 88올림픽고속도로 - 지리산IC - (8.3km) - 실상사 진입로 (멀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고속도로만 달리므로 길찾기가 쉬움) |
◇ 대중교통
● 인월이나 함양에서 마천 또는 백무동행 버스 이용, 실상사 앞에서 하차/ 20-30분 간격 ● 남원에서 백무동행 직행버스 이용/9회 ● 전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백무동행 직행버스 5회 운행 ● 대구서부시외버스정류장에서 거창, 함양 경유하여 백무동 가는직행 3회 운행(07:40, 10:40, 13:30, 3시간 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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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
학생 |
어린이 |
군인 |
| 개인 |
1,500원 |
1,200원 |
800원 |
1,200원 |
| 단체 |
1,500원 |
1,000원 |
700원 |
1,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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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척의 실상산문]
9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개창된 것은 실상산문이다. 홍척은 826년(흥덕왕1)에 귀국하여 지리산에 있으면서 선법을 전하였는데 그의 교화력은 도의보다 큰 바 있어 세인들은 이를 일러 '북산의 남악척'(北山義南岳陟) 이라고 일컬었다 한다. (서당 지장의 법을 이어받음) 홍척이 실상사를 창건하고 여기에서 선법을 크게 선양하게 됨에 따라 실상산문이 형성되며 교화한 제자도 수백명에 이른다. 특히 흥덕왕과 태자 선강(宣康)의 귀의(歸衣)는 실상산문이 가장 왕실과 밀착되었던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의 법맥은 수철(秀澈) 화상에게로 이어진다.(홍척 - 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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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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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실상사 제2조사 수철화상의 부도탑으로 높이 2.42m이다.
극락전을 향하여 오른쪽에 세워졌는데 현재 위치가 본디의 자리이며 신라 석조부도로써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고 높직한 8각 지대석 위에 건립되어 있다. 지대석 위에는 굄단 등 아무런 시설도 없이 기단부를 놓았는데 기단은 상ㆍ중ㆍ하대석으로 이루어졌다.
8각 하대석은 하단에 높직한 갑석형(甲石形)을 두르고 측면에는 그 주연을 따라 운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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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수철화상 능가 보월탑비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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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철은 신라말의 선승.
경문왕, 헌강왕이 모두 깊이 불도에 귀의하여 화상을 초청, 심원사 에 머물게 하여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경복 2년(893)진성왕 7년 5월에 천화(중의 죽음)하니 향령 77,역하 58 이었다.
왕은 익호를 루철이라 하고, 탑 이름은 능가보월이라 하였다.
비문은 알수 없고 조선 숙종 40년(1714)에 비를 건립하였다.
글씨체는 당시 유행한 구양순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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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석등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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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삼층석탑 앞에 서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높이는 5m이다. 팔각기둥의 전형적인 간주석(竿柱石)과는 달리 고복형(鼓腹形= 북형)간주석을 지닌 석등으로서 그 전체적인 형태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이나 임실 용암리 석등과 유사하여 이 지방에서 유행된 석등형식으로 볼 수 있다.
8각의 지대석 위에 올려진 하대(下臺)는 이중으로 구획되어 하단부의 각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그 위로 잎이 넓은 8엽의 복엽복판(複葉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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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부도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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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경내의 고려시대 부도로서, 높이는 3.2m이며 팔각원당형의 일반적인 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형태는 안정감이 없어 보이나 정제(整齊)된 편이며 약한 석질의 탓인지 조각은 간소하고 소박해 보이고 특히 상대석 윗면의 귀꽃 표현은 기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에 속하는 부도로서는 걸작에 속한다.
더욱이 하대석의 용트림과 구름무늬의 강한 돋을새김은 이색적이며, 상대석 앙련과 탑신 굄대의 연판배치는 신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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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철제여래좌상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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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약사전(藥師殿)에 봉안된 신라시대의 철제여래좌상이며, 높이 266m이고, 무게 2.6t이다.
꼿꼿한 자세로 앉아 정면을 향하고 있는 이 불상은 두 발을 양무릎 위에 올려놓은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현재 광배(光背)는 없어졌고 나발(螺髮)로 처리된 머리위에는 높이 14cm, 밑변 48cm나 되는 큼직한 육계(肉괄)가 표현되었으나 머리와 확연히 구분되지 않고 있다.
얼굴은 넙적하여 거의 직사각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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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삼층석탑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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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는 동ㆍ서탑 각각 8.4m이고 경내 중심법당인 보광전 앞에 동서로 건립된 2기의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들은 규모, 양식, 보존상태 등이 같으며 특히 2기 모두 상륜부가 거의 완전히 남아있다.
먼저 기단 주위에 넓게 장대석을 둘러 탑이 앉을 자리를 설정하였고 기단은 이중이며 하대석과 중석(中石)을 1석으로 하여 4매 장석으로 하층기단을 만들었다.
중석에는 우주와 탱주 1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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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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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부도로 높이 2.42m이다.
증각대사(證覺大師) 즉 실상산문(實相山門)의 개산조(開山祖)인 홍척(洪陟) 화상의 부도이다.
지면에 넓은 방형 지대석이 놓이고 그 위에 층단을 이루는 8각 2단의 하대석이 놓였는데 하단에는 운문(雲文)이 조각되었으나 상단에는 위에 넓은 굄이 있을 뿐이다. 하대석 위에는 높은 8각 중석(中石) 받침이 따로 놓였는데 밑에는 하방같은 턱이 있고 그 위에는 각 우각(隅角)에 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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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비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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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료탑 앞 넓은 터에 서있는 증각대사의 탑비.
고려시대의 비신은 일찌기 상실되고 현재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다. 이수 높이는 1.03m이고, 귀부너비 1.6m이다.
귀갑문은 없으며 4족은 각축되었으나 귀두는 말쑥하고 경부와 배각과의 분계가 분명치 않아 얼핏 보기에는 수달형을 이룬다.
배부 중앙에는 비신을 끼울 수 있는 거형돌연과 구멍이 있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 '응료탑비'(凝廖塔碑)라는 전액이 새겨져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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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약수암목조탱화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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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부조로 새긴 후불탱화.
조선후기부터 유행.
연대(정조 6년, 1782년)가 명확하고 작품이 우수하여 대표작으로 꼽힌다.
상단에는 2대제자와 지장보살 등 4보살을 배치하였고 하단에는 아미타본존불과 좌우로 관음, 대세지보살 등 4보살을 배치하여 상,하단으로 나누었다.
불상은 얼굴과 신체 모두 사각형이며 근엄하면서도 친근감이 넘치고 있는 모습하고 있다.
옷은 두껍고 옷주름은 간략하게 표현되었는데 다소 둔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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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일원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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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증각대사 홍척이 흥덕왕 3년(828)에 창건.
선종을 받아들이며 선종구산 중 처음으로 이 절을 세우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것을 숙종 때 다시 지었으나 고종 때에 화재를 입어 소규모로 재건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경내에는 동북향을 한 보광전이 있고 그 앞 양쪽에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 2기와 약사전, 명부전, 요사체 등이 있다.
특히 이 절에는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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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실상사석장승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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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귀를 막기 위해 실상사 앞에 세워 놓은 것이다.
돌로 만들어져 장승의 옛모습을 오래 보존하여 왔다.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라 쓰인 것과, '대장군(大將軍)'이라 쓰인 것이 있다.
상원주장군은 눈이 크고 둥글며 툭 튀어나왔고, 코가 크며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있다. 손은 창을 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대장군은 후에 만들어진 것이라 이러한 특징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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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극락전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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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목조불전으로 고승들의 부도탑이 있는 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인 주심포계(柱心包系) 5량식 단층 맞배지붕건물이다.
극락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에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숙종 26년(1700년)에 중건하였다. 그러나 고종 19년(1882년)에 함양출신 양재묵과 산청출신 민동혁이 절터를 뺏으려고 전주 영장(營將)과 짜고 불을 질러 모두 소실되었다.
지금의 절은 그후 승려들의 힘으로 건립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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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위토개량성책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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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찰의 토지대장이다.
당시 실상사의 소유토지대장 중 일부이지만, 250년전 조계 선종사찰의 재정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상사의 토지재산을 알 수 있다.
이 토지대장의 내용을 보면 실상사의 본사와 여러 소속암자의 기지(基地) 및 불양답(佛養畓)을 구분하고, 전답의 소재지, 명칭, 위치, 형태, 등급, 지릉, 경작인, 조세 등을 표시하고 있다.
각 전답에는 이 절의 소유 토지의 기장번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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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동종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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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종은 실상사 경내에 위치. 통일신라시대의 범종으로 높이가 28~99cm이고, 입지름은 96~99.5cm,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이다.
1967년 3월 보광전 축대 및 땅속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미 상반부를 잃어 찌그러진 모습 그대로이다.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유곽(乳廓), 비천상(飛天像), 당좌(撞座) 등 이지만 우수한 수법을 볼 수 있다.
종신(鐘身)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2구의 주악비천상은 구름위에서 천의와 영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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