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안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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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그 모습 그대로인 민속마을 |
소재지 :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남내리 2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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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보존이 가장 잘된 곳이다. 성안에는 전통적인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고려 후기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조선 태조 6년(1397)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쌓아 성의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 전체 모양은 네모졌으며 길이는 1410m. 동서남쪽 3곳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서로 연결된 문이 있다.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4군데의 치성이 성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성안에는 100여 가구의 만가들이 있다. 보통 가구당 3채의 초가집과 마당 텃밭이 있다. 초가집들은 3칸 정도의 일자형 안채와 아래채, 농기구 등을 보관하거나 외양간으로 쓰는 헛간채와 재래변소로 이용하는 잿간으로 이루어져있다.
현대화 물결에 따라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변형되기 시작했고 성의 일부가 자연적으로 붕괴 유실됨에 따라 1983년 사적으로 지정하고 읍성의 종합적인 보존사업이 시작되었다. 백성들이 살던 초가집 가운데 보존가치가 가장 높은 9동은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했고 일부 변형되거나 낡은 집들은 복원 수리하였다. 민가와 한국 전래의 토속적인 민속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세시풍속과 통과의례 등 전통 생활문화를 지켜온 주민이 직접 살고 있는 민속마을이다. 성내에는 108가구 279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관청터에서는 관아와 객사 주변의 담장 월대 삼문 등을 발굴 복원하고 성곽과 문루 등을 복원하였다.
여러 성씨가 모여사는 이 마을 중앙에는 선정을 베풀었던 군수 임경업(1594-1646)의 선정비가 있다. 지금도 그의 영혼이 이 마을을 수호한다는 전설이 있어 매년 정월 보름에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동문밖 읍성의 입구에는 낙안향교가 있다. 예전에는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했으나 지금은 당시의 풍속과 생활문화를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성곽을 한바퀴 돌다보면 토담을 친 초가집들이 옛모습을 그대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 동네 한 가운데는 차일을 친 토속음식점이 몇 채 있는데 잔칫집 같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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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
● 부산→남해고속도로→승주IC→우회전 벌교방면(857번 지방도로)→우회전 남쪽방향 857번 지방도로→30분 정도 진행→낙안읍성 사거리→우회전 낙안읍성 입구
●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호남고속도로→승주IC→우회전 벌교방면(857번 지방도로)→우회전 남쪽방향 857번 지방도로→30분 정도 진행→낙안읍성 사거리→우회전 낙안읍성 입구
● 서울→중부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진주→남해고속도로(순천방향)→승주IC→우회전 벌교방면(857번 지방도로)→우회전 남쪽방향 857번 지방도로→30분 정도 진행→낙안읍성 사거리→우회전 낙안읍성 입구 |
◇ 대중교통
● 고속버스 * 서울-순천, 06:10분부터 30분 간격, 22:50분 막차 * 부산-순천, 06:30분부터 1시간 간격, 23:00분 막차 * 대구-순천, 07:00부터 2시간 간격, 18:00 막차
● 시내버스 순천역에서 낙안행 시내버스 40분마다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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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
학생 |
어린이 |
군인 |
| 개인 |
1,100원 |
600원 |
450원 |
600원 |
| 단체 |
900원 |
500원 |
350원 |
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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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민루]
성내에는 4개의 누각(낙민루, 쌍청루, 빙허루)이 있었으며 그 중 낙민루는 남원의 광한루와 우리 시의 연자루 등 호남 지방의 명루로서 1924년 중수하였으나 여순사건 당시 공비들에 의해 소실된 것을 1987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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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자료관]
낙안읍성은 선사유적뿐만 아니라 고유한 향토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낙안의 역사, 생업, 의례, 풍속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향토미술관, 역사문화실, 민속실에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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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풍루]
이 건물은 조선 순조34년(1834) 성균관 진사 김호언이 중건하였으며, 낙안읍성을 출입하는 3개문(동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그동안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하여 자취가 없어졌는데 1987년 남문과 함께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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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아]
수령이 안채로 사용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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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조선시대 때 지방 관아건물로서 감사, 병사, 수사, 수령 등이 지방행정을 처리하던 곳이다. 중앙마루는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 1986년 복원하였다. 또한 동헌 좌측에는 수령이 안채로 사용하던 내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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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전경]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성곽 1,410m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관아와 9동의 중요민속자료 등 민가와 한국전래의 토속적인 민속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고, 세시풍속과 통과의례 등 전통생활문화를 지켜온 주민이 직접 살고있는 민속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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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구]
원래는 동문밖 평석교 앞에 3기가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현재 2기가 보존되어 있다. 개는 잡신의 침범을 막는 영물로 믿어 왔는데 풍수지리에 의하면 동쪽에 있는 멸악산(오봉산)의 험준한 기세를 막고자 석구상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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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김대자 가옥
(전라남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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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과 서문을 잇는 중앙대로의 서쪽에 자리한 초가.
대문에서 깊숙히 남향한 안채가 있고 대문의 바로 옆 서쪽에는 측간이 자리잡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일자집인데 부엌과 안방, 마루, 건넌방을 두었으며 전면에는 반칸 너비의 툇마루를 두어 개방하였다.
작은방앞에 ㄱ자로 꺾인 돌담을 둘러 흙바닥의 돌담 안쪽을 헛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큰방엔 방문옆에 눈높이 만큼의 크기로 광창을 달아 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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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최창우 가옥
(전라남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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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성의 동문은 향교로 가는 대로에 있어서 통행이 빈번하다.
동문 길가의 여러 점포 중 비교적 옛모습을 순수하게 지니고 있는 집이다.
점포는 1칸 크기로 큰길에 면한 동남향에 자리잡고 있으며 점포 뒤에도 1칸크기의 점포방이 꾸며져 있다.
점포옆 남쪽에는 대문이 있고 대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돌아오면 안채에 이르게 된다.
안채는 서북쪽에서부터 부엌, 방, 헛간의 순으로 배열되었으며 ㄱ자로 꺾이면서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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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객사
(전라남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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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32년(1450) 군수 이인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이 건물은 정당 마루에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셔놓고 매월 삭망에 군수 이하 전관속이 망궐배례를 하였으며, 왕명을 받고 파견된 관리가 유식하였던 건물로 좌측방은 문인이 우측방은 무인이 사용하였다.
객사는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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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 군수 비각
(전라남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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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 6년(1628)에 건립한 임경업 군수 선정비는 인조 4년 임장군이 1626년 5월에서 1628년 3월까지 낙안군수로 봉직하면서 토성을 석성으로 중수하고 선정을 베푼 은덕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각으로 임군수 임직후 군민이 세운것이다.
비는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를 갖추고 있는데 비신중앙에 해서체의 종서로 군수 임공경업 선정비라 쓰여져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제향을 모시고 있다. 비각 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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