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씬한 자태를 뽐내는 기암 봉우리를 가졌다 하여 일찍부터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린 산. 우리나라 팔경중의 하나이며 경북 상주와 충북 보은에 접해 있다. 이 일대는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주봉인 천황봉(1,058m)을 비롯하여 비로봉, 입석대, 신선대, 문수봉, 문장대, 관음봉, 묘봉 등 9개의 봉우리들이 연이어 늘어서 있어 구봉산으로도 불렸다. 신라시대에 이르러 세속(俗)을 떠나(離) 있다는 뜻을 가진 속리산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하나 사시사철 사람들로 북적돼 오히려 세속의 거리에 속해 있는 속리(俗里)란 한자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산이다. 빼어난 봉우리를 자랑하듯 속리산은 석산(石山)이요, 물 또한 석천이어서 물이 맑다. 주봉인 천황봉에서 샘솟은 물방울은 계곡을 흘러 한강, 금강, 낙동강을 이루어 낸다. 하지만 속리산 자체는 다른 명산과 같은 물 깊은 계곡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속리산 국립공원내에 화양동계곡과 선유동구곡이란 빼어난 계곡이 있지만 이는 원래의 속리산 영역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속리산 산행코스는 길이 잘 나 있어 초보자들도 누구나 손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주로 법주사에서 시작하여 문장대를 돌아 천황봉에 이른뒤 다시 법주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잘 알려져 있다. 상주 시어동 코스도 자주 이용된다. 법주사는 속리산이 품고 있는 오래된 사찰로 '속리산= 법주사'로 통할만큼 유명하다. 신라시대에 세워져 별상전, 쌍사자탑, 석연지 등 국보 문화재를 보전하고 있다. 속리산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대에 서면 속리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이곳을 세 번 다녀간 사람은 극락세계에 간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지 24년째인 진흥왕 14년(553년)에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됐다고 하는 고찰.
'동국여지승람' 등에 따르면 의신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하여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돌아오는 도중 장엄한 산세를 보고 속세를 떠나 불법에 안주할 수 있을만한 곳으로 여겨 그러한 뜻으로 법주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후 진표율사가 크게 확장했으며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중수된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수차례 중건되었다. ...
화북면 장암리에 위치한 해발 1,054m의 석대이다. 문장대의 원래 이름은 '운장대'였다. 바위 봉우리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해서 붙여졌으나 조선 세조가 문무시종과 함께 이 곳에 올라 시를 읊은 이후에 문장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경관이 좋기로 유명해 문장대에 3번을 올라야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문장대에 서면 속리산 천황봉과 관음봉, 칠성봉, 시루봉, 투구봉, 문수봉, 비로봉 등이 눈 ...
경업대는 임경업 장군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다. 평평한 바위가 깔려 있으며 바위벽이 문처럼 둘러서 있어 장수의 기개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바위굴에서 돌아나오는 약수는 임장군이 힘을 기르기 위해 마셨다해서 '장군수'라 불린다. 이가 시리도록 차고 깨끗해 경업대의 또 다른 명물이 됐다. ...
입석대는 속리산의 8대(臺) 중 하나로 천황봉과 문장대 중간 지점에 있다.
입석대는 이름 그대로 돌이 절벽위에 서 있는 형국이다. 네모난 이 돌은 얼핏 보기에는 쉽게 넘어질 것 같지만 수십명이 흔들어도 미동조차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임경업 장군이 경업대에서 도를 닦고 용력을 길러 이 곳에 돌을 세웠다고 한다. ...
동천암은 '소백산맥의 마지막 비경'이라고 칭해지는 쌍룡계곡에 있는 바위다. 병천마을 도로옆에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초서로 동천(洞天)이라 새겨져 있다.
글씨는 조선 중종 때의 명필 양사헌이 썼다고 전해진다. 두 글자를 이어 붙여서 한 획으로 휘갈겼는데도 바위와의 균형이 잘 들어맞는다. 그러나 '동천'을 쓴 연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늘이 돈짝만하게 보이는 통바위골'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